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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와 고양이의 기묘(猫)한 이야기3

조회수 2020. 7. 6. 11:0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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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이야기 -루이스 웨인과 조금 이상한 고양이들-

루이스 웨인과 조금 이상한 고양이들

요즘 가장 인기 있는 그림의 주제는 고양이다. 각자의 화풍은 다르지만, 고양이를 그리면 어느 정도 작품 판매가 보장된다고 할 만큼 정설(?)에 가깝다. 루이스 웨인은 캣 아티스트의 원조라고 부를 만한 인물로, 눈이 큰 의인화한 고양이가 트레이드마크다. 

맏이로 태어난 웨인은 스무 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뜨면서 일찍부터 가족의 생계를 도맡았다. 교직을 그만두고 프리랜서 화가로 활동하던 그는 영국의 시골 풍경을 그리면서 동물 그림 세계에 입문했고, 개 초상화를 그려 돈을 벌고 싶어 했다. 그는 어린 나이에 열한 살 연상의 아내와 결혼했는데, 안타깝게도 3년 뒤에 아내가 유방암으로 사망하고 말았다. 아내의 투병 기간 중 그를 위로해준 건 빗속에서 구조한 고양이 ‘피터’였다. 웨인은 피터의 모습을 자주 그렸고, 이를 본 아내는 그림들을 책으로 출간하라고 권했다. 비록 아내는 세상을 떠났으나 그는 고양이 화가로 명성을 날렸다. 당시 영국은 쥐 떼로 인해 반려묘 가정이 흔했기에 앙증맞은 고양이야말로 대중의 관심을 끌기 좋은 그림 소재였다. 1886년,  [일러스트레이티드 런던 뉴스]에 게재한 ‘새끼 고양이들의 크리스마스 파티’가 큰 인기를 끈 후 그는 고양이를 유머러스하게 의인화한 그림으로 화풍을 완전히 바꿨다. 이후 각종 엽서와 카드·동화책·잡지 등에 크로켓 경기를 하고, 파티를 즐기고, 술을 마시고, 도박을 하는 그의 고양이 그림들이 널리 쓰이며 빅토리아 시대를 풍미했다. 

초반에 유머러스하던 작풍은 후기로 갈수록 기이하고 독특한 분위기를 띠었다. 항간에는 그의 정신분열 증세가 심해진 것이 원인이라는 설이 떠돈다. 마치 이를 증명하듯, 그의 그림 속 고양이들은 점점 더 화려하고, 추상적 형태로 변해 말기의 작품은 고양이 형태가 거의 남아 있지 않을 정도다. 반면에 어머니가 카펫 디자이너 출신이었기에 그 역시 카펫 도안에 사용할 고양이 그림을 그린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진실은 누구도 모르는 일이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그가 10마리 넘는 고양이와 함께 살았으며, 유기묘를 구조해 가족으로 맞이하는 등 각종 동물 자선단체나 국제 고양이 클럽에서 활동하며 동물권 향상을 위해 힘쓴, 고양이를 진심으로 사랑한 예술가였다는 것이다. 그는 생전 고양이와의 추억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피터는 내 경력의 시작이고, 내 첫 노력의 발전이며, 내 창작의 완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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