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최고의 대사 맛집은?

조회수 2019. 12. 11. 10:4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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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영화 속 명대사-유행어, 한 줄에 담긴 페이소스

“묻고 더블로 가!”

2006년 개봉한 ‘타짜’(감독 최동훈) 대사가 13년이 지난 지금 수많은 ‘짤’을 양산하며 유행하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곽철용(김응수) 캐릭터가 재조명 받았다. ‘타짜’에서 고니(조승우)를 괴롭히던 곽철용은 어느덧 과감한 승부사, 순정 있는 남자, 신사답게 행동하라는 조언도 아끼지 않는 어른으로 유쾌하게 탈바꿈했다. 


네티즌의 밈(Meme) 문화로 김응수는 강제 전성기를 맞았다. “묻고 더블로 가”라는 대사를 활용한 한 버거 광고는 지난달 14일 유튜브 채널에 게재돼 5일 기준 685만 뷰를 돌파했다. ‘타짜’는 이미 수많은 명대사가 있었다. 평경장(백윤식), 정 마담(김혜수), 고광렬(유해진)의 대사는 물론 고니와 아귀(김윤석)의 마지막 대결 장면은 모든 대사를 외우는 이들도 적지 않다. 시간이 흘러 시리즈 세 번째 작품인 ‘타자: 원 아이드 잭’(감독 권오광)이 나올 때까지도 곽철용이 이렇게 인기를 끌 거라곤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특정 대사가 유행하기 위해선 패러디하기 좋은 먹잇감이 되거나 진한 페이소스가 담겨야 한다. 영화를 관통하는 한마디, 배우의 인상적인 연기 혹은 의외의 상황이 더해지며 만들어지기도 한다.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2019년 첫 천만영화 ‘극한직업’(감독 이병헌)에서 고반장(류승룡)이 전화 받으며 자동응답기처럼 내뱉는 대사는 그 자체에 큰 의미가 담기진 않았지만 상황과 톤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며 유행했다. 범죄조직 소탕을 위해 위장 창업한 치킨집이 맛집으로 소문나자 고반장은 수사에 집중하라며 진지하게 후배들을 다그치다 한 통의 주문 전화를 받는다. 곧바로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이것은 갈비인가, 통닭인가”라며 능숙하게 응대하는 고반장은 누가 봐도 명백한 가게 사장이었다.


해체될 위기에 처한 팀과 퇴직 연금을 털어 차린 치킨집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고반장의 모습은 ‘웃픈’ 감성을 자극한다. 아이러니한 상황 속에서 등장하는 해당 대사는 차분한 톤으로 버튼 누르듯 흘러나와 웃음을 배가시킨다. 류승룡은 시나리오 단계부터 영화 속 톤처럼 대사를 숙지했고 촬영 때까지 유지했다. 과장 없는 톤이기에 관객들에게도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예고편에서부터 관객을 사로잡았던 해당 대사는 한동안 “지금까지 이런 OO는 없었다”로 무한 활용됐다.

“3000만큼 사랑해
(I love you three thousand).”

‘어벤져스: 엔드게임’(감독 안소니 루소, 조 루소)은 그 동안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를 이끌어온 원년 히어로들과 작별을 고한 작품이다. 아이언맨을 연기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출연 계약이 ‘어벤져스: 엔드게임’을 마지막으로 종료된다는 소식이 들리며 마블 팬들의 아쉬움과 작품에 대한 기대감이 혼재됐다. 사선을 넘나들며 싸워온 아이언맨은 더 이상 영웅이 아닌 한 아이의 아버지로 살아가려고 했지만 결국 팀으로 돌아간다.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아이언맨에게 딸은 자신도 사랑한다는 의미로 “3000만큼 사랑해”라고 말한다. 영화 안팎으로 아이언맨과 작별해야 하는 관객은 간결하며 해맑은 한마디에 눈물을 삼킨다.


딸을 남겨두고 타노스와 두 번째 대결을 펼치게 된 아이언맨은 MCU의 시작을 알린 명대사 “나는 아이언맨이다(I am iron man)”를 다시 외친다. 누군가의 아들, 남편, 아버지인 토니 스타크는 필연적 존재가 돼 모두의 철인으로 남았다.

연출을 맡은 루소 형제는 중국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3000만큼 사랑해”라는 표현에 담긴 비하인드를 밝힌 바 있다. 감독에 따르면 이 표현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실제 자녀들이 평소 쓰는 말이다. 색다르면서 간결한 표현, 부녀간 사랑이 담기면서 많은 이들이 즐겨 사용하게 됐다.

“아들아,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부잣집 과외 선생으로 들어가기 위해 서류를 위조한 아들 기우(최우식)에게 기택(송강호)은 계획이 있다며 자랑스러워 한다. 말끔하게 입은 아들을 배웅하는 기택의 꾀죄죄한 모습과 능청스런 대사는 영화 초반부터 웃음을 유발한다.

상징이 가득한 ‘기생충’(감독 봉준호)은 현실을 꼬집는 대사들이 유독 많았다. 반지하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소독연기에 시야가 가려져도 기택은 “이 참에 소독하자”며 동요하지 않는다. 때가 탄 벽에 걸린 액자에는 분수를 지키며 만족한다는 뜻을 지닌 ‘안분지족’이라는 글자가 걸려있다. 안분지족하던 기택네는 조금씩 욕심부리고 계획을 세우면서 넘어선 안될 계급의 선을 넘는다.


단순히 웃기기만 했던 기택의 대사는 극이 전개될수록 마냥 가볍게 여겨지지 않는다. 폭우가 오던 밤, 지하실의 비밀이 밝혀지고 기택네는 걷잡을 수 없는 사건에 휘말린다. 이후 계획을 묻는 기우에게 기택은 “가장 완벽한 계획이 뭔지 알아? 무계획이야”라고 말한다. 계획하면 계획대로 흘러가길 바라지만 현실은 매번 계획과 기대를 벗어난다. 눈을 가리고 무심하게 말하는 기택의 모습을 보아 그 동안 사회가 기택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기대를 빼앗아 왔는지 짐작게 한다. 결국 그에게 남은 계획이라곤 무계획뿐이다.

“내 인생이 비극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개 같은 코미디였어(I used to think that my life was a tragedy. But now I realize, it’s a fxxking comedy).”

올해 칸영화제에서 ‘기생충’이 황금종려상을, 베니스영화제에선 ‘조커’(감독 토드 필립스)가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두 영화는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계층 갈등과 양극화 문제를 각자의 방식으로 풀어냈다. 영웅의 탄생이 아닌 악당의 탄생을 그린 ‘조커’는 상징적 캐릭터에 소름 끼치는 현실성을 부여했다.


유명한 코미디언이 되고 싶은 아서 플렉(호아킨 피닉스)의 직업은 광대다. 정작 자신은 웃음을 조절할 수 없는 병에 걸렸다. 정신병원에 입원했던 그는 주기적으로 심리상담사를 만나고 의사에게 약을 타먹는다. 그의 노트에는 “나의 죽음이 내 삶보다 더 ‘가취’ 있기를(I hope my death makes more cents than my life)”이라는 문장이 적혀있다. 이미 그의 삶은 죽음보다 싸구려가 돼버렸다.


조롱과 괄시, 경계의 시선만 받아온 아서에게도 잠시나마 희망이 보인다. 그러나 일말의 희망마저도 허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아서는 “난 항상 내 인생이 비극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개 같은 코미디였어”라고 말한다. 조커가 돼가는 아서의 대사는 자연스레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는 찰리 채플린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찰리 채플린과 다른 점이 있다면 아서는 이제 자신의 비극을 희극으로 보는 이들에게 총을 겨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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