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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마이 갓!' 할리우드 극장에서 터진 함성

조회수 2020. 2. 18. 12:0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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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비하인드 | '기생충' 할리우드 현지 극장에서 관람해봤다.."오 마이 갓!"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오스카 효과를 누리며 월드와이드 2억 달러 수익을 돌파했다. 지난 9일(이하 북미 현지기준)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포함해 4개 부문이나 수상한 후 일주일 동안 북미에서만 약 880만달러를 거둬들일 만큼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리기 이틀 전인 지난 7일, 웨스트 할리우드 선셋 대로에 위치한 AMC 선셋5 극장을 찾았다. 맥스무비 아카데미 특집호를 위해 취재차 돌아다니던 중이었다. 그 당시만 해도 AMC 극장에서 ‘기생충’의 상영횟수는 하루 1~2회에 불과했다. 시상식 이후인 현재 확인해보니 하루 4~5회 상영으로 늘어난 상태지만, 당시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임에도 불구하고 할리우드 현지에서도 상영이 뜨문뜨문 이뤄진다는 점에서 외국어영화의 한계가 느껴졌다.

그럼에도 놀라웠던 건 관객이 나뿐일 것 같다는 예상과는 달리, 상영관의 40%가 관객들로 채워져 있었다는 점이다. 혼자 온 관객, 둘 셋씩 짝지어 온 관객들 모두 ‘기생충’을 보러 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신기한 감상이 들었다.

성인 기준 티켓 가격은 1인 13.99달러였다. 한화로 1만 6000원이 조금 넘는 가격이다. 인터넷 예매를 할 경우 23달러까지 뛰었다. 북미에서 극장영화가 점차 저물어가고,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등의 OTT 시장이 활성화된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특별관이 아닌 일반관임에도 다소 높은 가격대였지만, LA 물가를 감안하면 납득이 안되는 수준은 아니었다. 반면 콜라 한 컵에 6달러가 넘어가는 건 좀 너무하다 싶었다. 콜라를 주문했더니, 1L짜리 커다란 컵을 손에 쥐어주는 게 아닌가. 그걸로 자판기에 있는 콜라를 뽑아먹는 식이었다. 오색찬란 다양한 음료수를 원 없이 리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탄산음료는 한잔이 적당한 나 같은 사람을 위한 저렴한 옵션은 전무했다.
‘기생충’ 상영관은 다소 작은 편이었다. 좌석 역시 평범했다. 상영 10분 전에 들어간 상영관은 광고 상영이 한창이었다. AMC 선셋5 극장은 한국과 달리 미국은 광고시간이 길지 않을 것 같다는 우호적인 편견을 깨트렸다. 한국이 10분 정도 광고를 내보낸다면 미국은 과연 두 배 이상이었다. 상영 10분 전에 들어갔으니, 도합 30분을 기다린 셈이었다. 내 생에 이렇게 오랫동안 극장에서 광고를 관람한 건 처음이었다. 6달러짜리 콜라라도 사 가지 않았더라면 큰일날 뻔했다.

20여분의 지난한 기다림 끝에 ‘기생충’이 시작됐다. 광고 내내 떠들던 관객들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기택(송강호)의 가족들이 첫 등장하는 오프닝 시퀀스부터 현지 관객들의 웃음이 소소하게 터져나왔다. 영화가 어느정도 흘러가고, 이 영화의 웃음포인트가 어떤 식인지를 파악한 관객들은 어느새 신나게 박장대소 하고 있었다. 관객들은 특히 시크한 매력의 기정(박소담)과 영화의 귀여움 담당 다송(정현준)이 나오는 장면에서 아낌없이 웃음을 퍼부었다. 특히 일명 ‘제시카송’부터 미술심리치료 드립까지, 연교(조여정)를 구워삶는 기정 캐릭터에 LA 관객들은 매료된 듯했다.

현지 관객들은 리액션도 남달랐다. 재밌으면 크게 떠들며 웃고, 충격적인 장면에는 탄성을 내질렀다. 문광 역의 이정은이 재등장하며 분위기가 바뀌는 장면부터는 ‘Oh, my god’ ‘Oh no’ ‘What?’과 같은 감탄사가 여기저기서 쏟아졌다. 이 가운데 국내 관객들을 배꼽 잡게 한 문광의 북한 아나운서 흉내는 애석하게도 LA 관객들을 웃기지 못했다. 나라가 다르니 통하지 않는 포인트가 존재하기 마련이었다. 그럼에도 대부분은 번역가 달시 파켓씨의 훌륭한 번역으로 그 간극을 좁힌 듯 했다.
‘기생충’이 칸 영화제에서 처음으로 선보여졌을 무렵부터 외국 문화와 한국적 정서가 잘 어우러진 초월번역이 큰 관심을 받았다. 극중 ‘짜파구리’를 라면과 우동을 합친 ‘Ramdon’으로 번역해 호평 받은 게 가장 유명하다. 이외에도 직역을 하면 사뭇 심심할 수 있었을 대사들을 더욱 인상적으로 번역한 자막들이 거듭 이어졌다.

달시 파켓씨의 초월번역 보다는, 봉준호의 철학(?)이 담긴 일부 대사들이 관객들을 가장 매료시킨 듯했다. 특히 송강호의 입으로 전하는 “부자니까 착한 거야”라는 대사에서 현지 관객들의 탄성이 터져나왔다. 부자니까 탐욕스러운 게 아닌, 부자니까 더 관대해지기 쉬운 현실의 아이러니를 일깨우자 모두들 충격받은 듯했다.

바로 뒷자리에 앉아있던 두명의 여성 관객은 그 누구보다도 리얼하고 커다란 리액션과 함께 ‘기생충’을 감상했다. 한국에서 온 기자라고 소개하며 그들과 대화를 텄다. “시끄럽게 굴어서 미안하다”는 두 여성에게 오히려 커다란 리액션을 해줘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조카와 이모 사이라는 두 여성 사만다와 메기는 ‘기생충’에 “뛰어나다(incredible)”라며 감탄을 연발했다. 메기는 “골든글로브에서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는데 그쳤지만, 오스카에서 작품상 후보에 든 이유를 알 것 같다”며 ‘기생충’에 만족을 표했다.

메기는 ‘기생충’이 작품상을 수상할 것이라고 예견했지만, 사만다는 쿠엔틴 타란티노가 연출한 ‘원스 어픈 어 타임 인 할리우드’가 받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이유는 브래드 피트가 섹시하기 때문이란다. 지당하신 말씀이다. 그럼에도 메기는 ‘기생충’이 수상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고, 결국 메기의 예상대로 ‘기생충’은 작품상은 물론 4개 부문의 오스카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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