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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작년 우리는 왜 호크니를 보러 갔을까

조회수 2020. 5. 12. 11:0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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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객원에디터 윤지혜/구성 멜론티켓 문화사람la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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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선으로 그림을 보내온 데이비드 호크니, 거장의 전시를 돌이켜보다.

연둣빛 새 잎이 돋은 풀밭에 수선화 한 무리가 피어있다. 줄기와 잎은 하늘을 향해 힘차게 뻗었는데 노랗게 피어 오른 꽃봉오리들은 땅으로 고개를 꺾고 있다. 봄을 맞을 온갖 준비와 단장을 다 하고 나왔지만 무언가 실망한 듯 힘이 빠진 모습이다. 움트는 새로운 계절에도 바이러스로 몸은 묶이고 마음은 무거운 우리들을 닮았다. 그러나 다소 풀 죽어 있더라도 화면 가득 채운 것은 꽃이다. <그래도 봄은 온다는 걸 잊지 마세요(Do Remember They Can‘t Cancel the Spring)> 라는 작품 제목처럼 봄은 왔고, 자연은 깊은 잠에서 깨어나고 있다. 

2020년의 봄은 이렇게 기억될까.

이 그림은 데이비드 호크니가 노르망디 자가에서 그린 10점의 아이패드 드로잉 가운데 하나이다. 이달 초 덴마크 루이지애나미술관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공개되어 온라인 상으로 확산되고 있다.


지나온 일들을 돌이키고 우리가 서 있는 위치를 살피는 것은, 코로나19로 일시적 중지 상태가 지속되고 있는 지금 이 유예의 시간을 보내는 한 방법일 수 있을 것이다. 전시 분야에서 눈길이 가는 건 작년 이맘때 개막한 서울시립미술관의 ‘데이비드 호크니展’이다. 

분명 호크니의 유명세는 전시가 화제를 모은 한 이유가 되었다. 생존작가 중 가장 비싼 페인팅으로 알려진 호크니의 1972년작 ‘예술가의 초상’은 2018년 11월 크리스티 뉴욕 경매에서 9031만여달러(약 1019억원)에 팔렸다. ‘미술시장에서 인기 있는 작가는 어떤 그림을 그릴까?’ 하는 호기심은 전시장으로 향하게 하는 한 동력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특히 ‘데이비드 호크니展’은 호크니의 초, 중, 후기 작업 세계 전반을 선보였으며, 전시된 작업 모두 복제품이 아닌 진품이고, <더 큰 첨벙>, <클라크 부부와 퍼시> 등 대표작들도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기획과 구성이 탄탄한 전시였다. 그렇기에 유명 작가나 사조를 내세우며 복제품이나 중요도가 떨어지는 작업들, 혹은 아류 작을 전시하곤 하는 많은 블록버스터 전시들과의 차별성이 있었다. 또 유명 작업일수록 대여, 보험, 포장, 운송 등 고액의 부대비용이 소요되기에, 추진하기 쉽지 않은 전시임에도 실현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출처: 멜론티켓

한편, 이 전시가 전시 관람 문화가 변화하는 지금, 그 복판에 위치해있다는 점도 고려해보아야 한다. 미술관 방문은 이제 가족, 연인, 친구간의 주요 여가 코스 중 하나가 되었다. 예술 향유를 위해서든, ‘힙’하고 ‘핫’한 장소에 방문해 인증샷을 찍기 위해서든 더 많은 관객들이 미술관에 방문하고 이를 SNS를 통해 공유하고 있다. 인스타그램에 ‘#데이비드호크니전’ 관련해 올라온 46K가 넘는 게시물들은 전시 홍보 효과를 낳기도 하며 입소문처럼 관객을 모았다. 아트숍 굿즈 판매 흥행 역시 전시가 더 이상 전시장 안으로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유명세나 관람 문화 같은 사회적 요인으로 둘러싸인 무대 위에 놓인 것은, 결국 호크니의 작업이다. 20대부터 50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온라인 사전 예매자 ¹ 를 모여들게 할 만큼, 호크니의 작품 자체에 동시대의 관객들과 소통하는 측면이 있다. 


미술사적인 배경지식을 요하거나 깊이 유추해야 비로소 실마리를 잡을 수 있는 많은 현대미술과 달리 호크니의 작업은 구상성을 잃지 않았기에 화면에 무엇을 그렸는지 식별할 수 있다. 관객들은 이러한 익숙하고 이해 가능한 동시대의 풍경과 경험이 호크니의 눈에는 어떻게 보였으며, 그가 이를 캔버스에 어떻게 담아냈는지 살피게 된다. 



출처: 서울시립미술관

탁월한 색채 감각과 분방하면서도 유려한 선 또한 서둘러 눈도장을 찍기 보다는 그림을 오랫동안 들여다보게 한다. 맑고 건조한 기후를 표현할 때든, 긴장감이 뒤섞인 정적 분위기를 그려낼 때든, 풍경을 환상적이고 강렬한 풍광으로 변모시킬 때든, 80대 원로 작가라는 게 무색해질 만큼 색은 감각적이고 다채롭다. 가까이 다가가면 보이는 얇고 섬세한 선들은 작품을 세밀하게 살피게 하고, 맑고 밝으면서도 마냥 단순하지만은 않은 작품의 정서를 곱씹을 수 있었다.

서울시립미술관은 2년에 한번씩 관객 수요에 맞는 걸작전을 기획하겠다고 밝혔다. ‘데이비드 호크니展’처럼 동시대의 감성에서 공감할 수 있고, 동시대와 발맞추어 고민을 나누는 작가들의 작업을 더 볼 수 있기를 바란다. 또 이렇게 여가의 일환으로서 전시장을 찾는 관객들의 즐거움이 점차 예술에 대한 보다 진지한 관심으로 이어지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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¹ 멜론티켓 예매자 통계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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