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 주유? 익명 계좌?.. 정치자금법 '3개월의 마법'

조회수 2018. 8. 23. 16:1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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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데이터랩 마지막회:) 데이터정책제안
정치자금 횡령, 3개월만 안 들키면 그만

295만원 어치 '집기'가 궁금하다
식당에서 주유비 쓴 유승민 의원

오직 석달, 지역 선관위 가야만 열람?
'법대로'에 결국 막힌 국회데이터랩

# 295만원 어치 '집기'가 궁금하다


뉴스래빗은 2018년 7월 10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정보공개시스템을 통해 한 차례 정보 공개를 청구했습니다. 윤한홍 자유한국당 의원의 정치자금 지출 내역 중 미심쩍은 항목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윤한홍 의원이 정치자금 수입·지출보고서에 기재한 항목입니다. '집기'를 사는데 295만5000원을 썼습니다. 2016년 11월 23일 성씨 성을 가진 익명의 사업자(번호 999-99-99999) 계좌로 대금을 입금했다는 사실 외에 알 수 있는 내용이 없습니다.


그게 어쨌다는거죠? 윤 의원이 정치자금 295만원을 어디에 썼는지 알아야 하는 이유가 뭘까요?


정치자금법
제1조(목적)

이 법은 정치자금의 적정한 제공을 보장하고 그 수입과 지출내역을 공개하여 투명성을 확보하며 정치자금과 관련한 부정을 방지함으로써 민주정치의 건전한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

총 65개 조에 달하는 정치자금법 중 가장 먼저 등장하는 제1조는 '투명성'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윤한홍 의원의 회계보고서 내용은 투명하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나쁜 마음을 먹고 불법 선거운동에 사용했는지 알 도리가 없죠. 295만5000원으로 어떤 집기를 샀는지 궁금했습니다. 뉴스래빗이 중앙선관위에 해당 항목의 적격 증빙 서류를 요청한 이유입니다.

# 왜 하필 윤한홍 의원일까요?


윤 의원을 특별히 지목해 취재한 건 아닙니다. 그는 뉴스래빗이 선정한 20대(2016년 5월 30일~ 2018년 6월 4일) 국회 본회의·상임위회의 결석 2관왕 12명 중 한 명입니다. 2018년 6월 8일 뉴스래빗의 기사를 기준으로 본회의 결석률 22.62%, 상임위회의 결석률 31.58%, 종합결석률 26.88%를 기록해 결석 2관왕 10위에 올랐죠.

뉴스래빗은 본회의-상임위 결석 2관왕에 선정된 12명의 정치자금 수입·지출보고서를 모두 입수해 분석했습니다. 법안을 심사하는 본회의-상임위를 무단결석한 '입법기관' 국회의원이 어디서 무엇을 하며 국민의 세금으로 준 '정치자금' 돈을 썼는지 들여다보려는 의도였습니다.


뉴스래빗은 선관위에 12명에 대한 2016~2017년 2년 치 정치자금 사용내역 정보공개를 청구했습니다. 그리고 10일 뒤 1491매에 달하는 정치자금 지출 회계보고서를 받았죠. (역시나) 각 의원실이 작성해 선관위에 제출한 사용내역 문서를 스캔한 PDF파일이었습니다. 디지털 데이터베이스(DB)화가 아주 까다로운 '나쁜' 파일 형식이죠.


# 식당에서 주유비 쓴 유승민 의원


뉴스래빗은 DB화를 진행하면서 1491매 한장 한장 눈으로 손으로 검수했습니다. 지출 내역이 비상식적이고 불투명한 지출 내역 22건을 추출해냈죠.

그 중 하나가 윤 의원이 '집기' 대금 295만5000원을 익명의 계좌로 현금 입금한 건이었습니다. 어떤 집기인지도 안나오고, 누구의 계좌인지도 알 수 없는 정치자금입니다. 게다가 사업자번호는 999-99-99999,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윤 의원뿐만이 아닙니다. 식당에서 주유비를 결제했다고 기록한 유승민 바른미래당 의원, 학회 회비를 정치자금으로 지급한 김석기 자유한국당 의원, 군청에서 세대주명단을 5만7450원을 주고 구입한 홍문표 자유한국당 의원 등 미심쩍은 항목을 기재한 국회의원이 많았습니다.

여기까지도 고된 수작업이었습니다. 뉴스래빗은 전직 국회의원 보좌관 및 국회 관계자를 상대로 해당 22건 사용내역의 문제점을 취재했습니다. 돌아온 답은 '영수증까지 챙겨봐야 알 수 있다' 였습니다. 


결국 뉴스래빗은 의원실이 지출내역서를 선관위에 제출하면서 함께 낸 적격증빙자료 영수증을 정보공개청구로 확보하려 했습니다. 다만 의심스러운 22건 항목 중 우선 1건에 대한 적격 증빙 서류만 요청해보기로 했습니다. 한꺼번에 정보공개 청구를 했다가 또 수 백만원에 달하는 수수료 폭탄을 맞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범으로 정보공개 청구한 항목이 바로 윤 의원의 '집기' 지출입니다. 그럼 뉴스래빗은 윤 의원의 집기 지출 적격증빙 자료를 받을 수 있었을까요?


결과부터 말씀드리면 실패였습니다.


# 정치자금 횡령, 3개월만 안 들키면 그만?


중앙선관위에 청구한 정보공개는 윤 의원의 지역구인 창원시 마산회원구 선거관리위원회에 할당됐습니다. 청구일로부터 13일이 지난 2018년 7월 23일, 처리 결과가 나왔죠


그 결과는 '비공개' 결정이었습니다. 정보를 공개해 줄 수 없다는 결정이었죠. 그 이유는 아래와 같습니다.

창원시 마산회원구 선거관리위원회가 밝힌
비공개 사유

법령상 비밀·비공개(제1호) 2016년 11월 23일 윤한홍 의원 후원회기부금 계정에서 지출한 '집기' 항목에 대한 적격 증빙 서류는 정치자금법 제42조(회계보고서 등의 열람 및 사본교부)제3항에 의해 비공개함
정치자금법
제42조(회계보고서 등의 열람 및 사본교부) 제3항

누구든지 회계보고서, 정치자금의 수입·지출내역과 제40조제4항의 규정에 의한 첨부서류( 제2호 및 제3호의 서류를 제외한다)에 대한 사본교부를 관할 선거관리위원회에 서면으로 신청할 수 있다. 이 경우 사본교부에 필요한 비용은 그 사본교부를 신청한 자가 부담한다.
정치자금법
제40조 제4항 제2호 및 제3호

제2호: 제39조(영수증 그 밖의 증빙서류) 본문의 규정에 의한 영수증 그 밖의 증빙서류 사본
제3호: 정치자금을 수입·지출한 예금통장 사본


무슨 뜻인지 아시겠나요?


정치자금 지출의 영수증 및 증빙서류는 법적으로 비공개한다는 통보였습니다. 법이 그렇게 돼 있기 때문에 국회의원 정치자금 지출내역 영수증 정보를 공개할 수 없다는 겁니다.


# 3개월의 마법, 꼭 가야만 열람?


뉴스래빗은 그럼 적격증빙 영수증 확인을 어떻게 하느냐고 선관위 담당자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돌아온 대답 안에 '3개월'이 있습니다.


오직 회계 보고가 끝난 뒤 3개월 동안만 직접 선거관리위원회 사무소에 방문해야만 눈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3개월이 지나면 영수증이나 증빙 서류를 '절대' 열람할 수 없습니다. 대통령 할아버지가 가서 내놓으라고 해도 공개할 수 없다고 합니다.


정치자금법
제42조 제2항

관할 선거관리위원회는 제40조제3항 및 제4항의 규정에 의하여 보고된 재산상황, 정치자금의 수입·지출내역 및 첨부서류를 그 사무소에 비치하고 제1항의 규정에 의한 공고일부터 3월간(이하 "열람기간"이라 한다) 누구든지 볼 수 있게 하여야 한다.


윤 의원 영수증 항목은 2017년 회계보고에 포함돼 열람기간 3개월을 넘겼기 때문에 다시 공개 할 수 없다는 겁니다. 창원시 마산회원구 선관위와 중앙선관위 2곳 모두 재차 취재해봤지만 관계 법령에 따라 공개할 수 없다는 같은 대답이 돌아올 뿐이었습니다.


만약 3개월이 지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요. 뉴스래빗이 해당 의원의 영수증을 확인하려면 지역구가 있는 곳 선관위를 직접 방문해야 합니다. 윤 의원의 경우 창원시 마산회원구 선거관리위원회로 가서 열람 신청을 한 뒤 종이로 된 영수증을 보는 거죠.


21세기 정보기술(IT) 강국, 디지털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겠다는 대한민국의 후진적 현 주소입니다. 


# '법대로'에 막힌 국회데이터랩


뉴스래빗 국회데이터랩은 결국 더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법대로 한다는 선관위 공무원들을 비난할 수만도 없습니다. 


다만 윤한홍 의원이 295만5000원을 누구에게 보냈는지, 유승민 의원이 식당에서 주유비를 결제한 시간대는 언제인지, 홍문표 의원은 어떻게 개인정보인 세대주 명단을 군청에서 돈을 주고 살 수 있었는지, 김석기 의원은 정치자금으로 학회 회비를 낼 수 있었는지도 알 수 없게 됐습니다.


불투명한 정치자금법에 답답한 건 시민들입니다. 답답한 건 정치자금법뿐만이 아닙니다. 국회데이터랩 전반에 걸쳐 비상식적인 의정활동 결과를 보인 의원들이 많았습니다.


법안을 최종 가결하는 본회의 84회 중 절반이 넘는 46회에 무단결석한 서청원 의원, 2016년 6월 8일부터 2018년 8월 23일까지 807일 동안 대표 법안을 단 한 건도 발의하지 않은 김무성 의원 등입니다. 그러나 그들을 움직일 수 있는 수단은 전혀 없습니다.


# 마지막편, 국회에 4가지 제안합니다


뉴스래빗은 2018년 4월 1일부터 2018년 8월 23일 까지 20대 대한민국 국회의원의 의정활동 성적표를 #국회데이터랩 11차례 데이터저널리즘으로 공개했습니다.


1회: 20대 국회 '결석왕' 서청원…톱20 중 17명 자유한국당 


2회: 20대 국회 '개미와 베짱이'…김무성 등 법안 대표발의 '0건'


3회: 20대 국회 입법 타율왕 톱20…박광온 등 개근왕-가결왕 '2관왕'


4회: 단 2.6%…5~8선 중진의원들 발의 안하나요?


5회: 20대 국회의원 재산 총 1조2547억…증권>건물>예금>토지 '재테크'


6회: [데이터 공유] 20대 국회 의원 286명 및 직원 37명 재산 내역 공유합니다


7회 : 또...자유한국당 국회 상임위 무단결석 1등, 출석은 꼴찌


8회 : 본회의-상임위 결석 2관왕 12명…서청원 한선교 조원진 김용태 김무성 톱5


9회 : [데이터 공유] 20대 역대 국회의원 302명 상임위 전원 출결 성적표


10회 : [데이터 정책제안] 선관위원장님, 113만원 꼭 받아야겠습니까?


11회 : [#국회데이터랩]식당 주유? 익명 계좌?…정치자금법 '3개월의 마법'


이번 데이터정책제안은 2018년 #국회데이터랩 시리즈의 마지막 편입니다.


11회 데이터저널리즘을 보도하면서 국회의원 민낯을 더 깊숙이 들여다보려 노력하면 할수록, 국회와 국회의원은 다양한 제도적 장치와 시스템, 그리고 관련 기관의 보호를 받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 보호 디테일은 너무나 꼼꼼하고, 세밀해서 가까이 다가가지 않으면 그 존재를 알 수도 없는 일종의 '마법의 벽'과도 같았습니다.


'법대로'와 '보호 시스템'에 막힌 뉴스래빗의 #국회데이터랩은 여기서 멈춥니다. 다만 마지막으로 대한민국 국회와 시민사회에 4가지 정책 변화를 제안합니다.


첫번째, 본회의와 상임위에 25% 이상 무단결석하는 의원을 퇴출하는 조항을 국회법에 명시하길 제안합니다. 


두번째, 법안 발의가 저조한 의원에게 해당 정당이 경고나 징계를 내리고, 입법 활동에 더 집중할 수 있는 다양한 국회의원 윤리 교육를 시행하길 제안합니다. 


세번째, 시민사회의 요구에 적격 증빙 서류를 공개하지 않는 모든 정치자금 지출을 국민 세금으로 환수하는 제도를 제안합니다.


네번째, 국회의원의 정치자금 사용현황을 모든 국민이 볼 수 있도록 실시간 공개할 것을 제안합니다.


너무 허무맹랑해 보이나요? 뉴스래빗이 11회 시리즈 #국회데이터랩을 하면서 대한민국 국회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느낀 4가지 제도입니다.

왜 이 제도가 필요하냐고요? 이 원칙들은 특권으로 점철된 우리 국회를 제외한 한국 사회 곳곳에 일상적으로 적용되는 규칙들입니다. 

대학생의 수업 25% 결석은 곧바로 F 학점 처리이며, 회사원의 업무 경비 처리는 적격증빙 공개 제출로 이뤄지며, 대한민국 평범한 구성원들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매순간 자기 혁신을 강요받고 있습니다. '혁신' '혁신'을 귀에 딱지가 앉을만큼 매일 매일 들으며 새로운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2016년 8월 중앙선관위는 이미 정치관계법 개정의견을 제출한 바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국회의원의 정치자금 사용내역을 실시간 공개하자는 '정치자금 회계투명성 강화' 제안입니다.

그런데 시행은 언제 하나요? 국회의원도 대한민국 국민인데 예외일 수 있나요?

p.s 그간 뉴스래빗 #국회데이터랩에 보내주신 많은 독자분들 응원 감사드립니다. 보다 나은 국회 관련 데이터저널리즘으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 뉴스를 실험하라 !.! 뉴스래빗

# 데이터 정책제안 ? 질 좋은 데이터저널리즘 콘텐츠는 양질의 데이터를 확보할 때 비로소 완성됩니다. 뉴스래빗이 공공데이터 수집 및 정제, 분석 등 과정에서 겪은 문제점이나 애로사항을 바탕으로 데이터 관련 정책을 정부 및 지자체, 공기업 등 공공부문에 제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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