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외국인이라 장난친 건가?
작년 가을, 부모님과 일본을 갔다. 두툼한 여행 책을 가져간 덕분에 여행 내내 많은 도움을 받았다.
하루는 한 박물관으로 향했다. 여행 책엔 박물관 입장료까지 상세히 나와있었다. 어른 한 명에 600엔이니까 1,800엔을 내기 위해 천 엔짜리 지폐 두 장을 매표소 창구에 내밀고 어색한 일본어로 “어른 세 명이오.”라고 말했다.
매표소 직원은 친절하게 웃으며 입장권 세 장과 거스름돈을 건넸다. 내가 한국인임을 알아보고 한국어 책자도 챙겨 줬다.
우린 서둘러 입장했다. 입장한 지 10분 정도 지났을까. 그제야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 확인했다. 총 170엔이었다. 200엔이어야 할 거스름돈에서 30엔이 모자란 것이었다.
'내가 외국인이라 장난친 건가? 그러고 보니 아까 좀 비웃는 것 같았어.' 하지만 이미 박물관 안으로 한참이나 들어왔고 돌아간다 한들 뭐라 설명해야 할지 막막했다. 거스름돈을 받은 순간 확인하지 않았던 것을 후회했다. 당연히 관람이 즐거울 리 없었다.
저녁에 숙소로 돌아온 나는 짐을 정리했다. 입장권과 팸플릿을 버리려는데, 내 눈에 들어온 글자에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입장료 610엔.”
아차, 싶었다. 여행 책엔 인상 전의 입장료가 적혀 있었던 것이다. 책만 믿고 거스름돈을 바로 확인하지 않았던 것도 잘못이지만 매표소 직원을 의심했던 게 너무나 부끄러웠다.
처음엔 미소가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엔 비웃음으로 느꼈던 내가 정말 창피했다. 세상은 마음먹은 대로 보인다는 어느 성인의 말이 가슴 깊이 와닿는 날이었다.
_월간 《좋은생각》에 실린 이정연 님의 사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