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어 시간쯤 지나 남편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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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복숭아의 존재를 귀신같이 알아낸다. 남편이 엉금엉금 기어 다닐 무렵, 시어머니가 연분홍빛 복숭아 하나를 갈아 남편에게 먹였다고 한다.
그날 병원 응급실에 간 시어머니는 의사로부터 “아드님은 복숭아를 먹는 것은 물론이고 복숭아털이 피부에 닿거나, 냄새만 맡아도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고 호흡곤란이 올 수 있습니다.”라는 말을 들었고, 남편은 그 후 한 번도 복숭아를 먹은 적이 없다고 한다.
운명의 장난일까. 남편과 달리 나는 어릴 때부터 복숭아를 밥 대신 먹을 정도로 좋아했다. 나뿐 아니라 우리 식구 모두가 복숭아를 좋아해 갈아먹고, 깎아 먹고, 잼으로 만들어 먹고, 심지어 샌드위치 빵 속에도 넣어 먹는다.
하지만 남편을 만난 뒤 나는 혼자 시장에서 복숭아를 사 먹고 공중 화장실에 가서 이를 깨끗이 닦은 다음 옷에 밴 복숭아 냄새까지 철저히 검사하고서야 집으로 들어갔다.
어느 주말 오후. 길에서 향긋한 복숭아 냄새를 맡은 나는 무심코 “아, 정말 맛있는 냄새다!” 하며 코를 벌름거렸다. 하지만 먹고 싶은 마음을 접은 채 집에 왔고 남편은 평소와 다름없이 운동을 하러 나갔다.
두어 시간쯤 지나 남편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남편은 보이지 않았다. 그때 신발장 위에 노란 고무줄로 단단히 묶인 비닐봉지가 눈에 띄었다. 그 옆에는 막 벗어 놓은 일회용 비닐장갑과 메모가 있었다.
“사랑하는 여보, 복숭아 먹고 싶었지? 아주머니가 단단히 포장해 줘서 아무 탈 없이 들고 왔어. 동네 한 바퀴 돌고 올 테니까 맛있게 먹어.”
_월간 《좋은생각》에 실린 방혜원 님의 사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