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건으로 선입견이 생겨서일까, 친구를 만나면 부정적인 모습만 보였고, 결국 고향에 가도 연락 한 번 하지 않는 날이 많아졌다.
얼굴 봐야지
학창 시절을 함께 보낸 단짝이 있다. 체육 실기 시험을 앞두고 2단 줄넘기를 못하는 나를 도와주고, 살을 빼기로 결심했을 땐 같이 운동도 해 주었다.
졸업 후 난 서울에 있는 대학에, 친구는 지방 대학에 진학했다. 가끔 고향에 내려가면 맥주를 마시며 밤늦게까지 대화를 나누었다. 친구는 첫 여자 친구가 생겼다며 만날 때마다 연애 이야기를 했다.
일 년 후 친구가 여자 친구와 헤어진 날 일이 벌어졌다. 혼자 술을 마시다 옆자리 사람들과 시비가 붙어서 폭력을 썼고, 그로 인해 집행유예를 선고받게 된 것이다.
그 사건으로 선입견이 생겨서일까, 친구를 만나면 부정적인 모습만 보였고, 결국 고향에 가도 연락 한 번 하지 않는 날이 많아졌다. 그러는 사이 나는 자격증을 따고, 어학연수를 가고 대기업에 취직하여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그러던 중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망설이다 친구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새벽 2시, 검정 점퍼를 입은 친구가 장례식장에 찾아왔다. 최근 택배 일을 시작했는데 조금 전 마지막 배송을 마쳤단다. 새벽 6시에 다시 나가야 한다고. 왜 이렇게 무리해서 왔느냐는 말에 친구가 한마디 툭 내뱉었다.
“다른 게 중요하니? 얼굴 봐야지.”
순간 뒤통수라도 맞은 것 같았다. 누구보다 친구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나였다.
먼저 싸움을 건 적도 없었고, 괴롭힘 당하는 아이들 편에 섰던 친구였다. 그런데 난 단 한 번의 잘못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그 친구의 단점만 찾아내려 했다. 부끄럽고 미안해 눈시울이 붉어졌다.
친구는 새벽 3시가 다 되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떠나는 차의 불빛이 사라질 때까지 눈을 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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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경상북도 경산시에서 박재형 님이 보내 주신 사연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