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입주해 거실 창 열었는데..코앞에 무덤 수백개가

조회수 2019. 10. 23. 06: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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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집고] “거실 창을 열면 공동묘지가 보입니다. 이런 집에서 아이들과 어떻게 살며, 누굴 초대할 수 있을까요?”

출처: /입주자 커뮤니티 제공
[땅집고=서울] 전남 해남의 A아파트 102동 1,2라인 거실에서 본 공동묘지.

올 9월 30일 입주를 시작한 전남 해남군 A아파트. 지역에서 가장 큰 단지여서 입주 전부터 주민들 관심이 컸다. 전용면적 84㎡ 분양가는 2억2000만~2억5000만원. 그런데 막상 아파트에 입주한 주민들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거실 창문을 열면 공동묘지가 한 눈에 들어왔던 것. 260여기의 분묘가 아파트 단지 앞에 들어서 있다.

■ “분양 당시 공동묘지 이전 약속” vs. “그런 적 없다”

출처: /해남군의회 홈페이지 캡처
[땅집고=서울] 입주 전 묘지를 이전하는 줄 알고 아파트를 분양받았다는 내용의 민원.

물론 입주자들이 단지 코 앞에 공동묘지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분양받은 것은 아니다. 입주민들은 “시행사가 공동묘지를 옮겨주고, 해당 부지에 철쭉 군락지와 산책로를 조성하기로 약속했다”고 주장한다. 입주자 커뮤니티에도 ‘추모공원이 완공되면 묘를 옮긴다고 해서 계약했다’, ‘명백한 허위·과장 광고가 아니냐’는 댓글들이 달려 있다. 

이에 대해 시행사인 B사 측은 “분양 당시 입주민들에게 묘지 이전을 약속한 적이 없고, 분양받기 전 직접 현장에 가보라는 설명도 충분히 했다”고 반박한다. 

출처: /해남군의회 홈페이지 캡처
[땅집고=서울] 아파트 옆 공동묘지에 '철쭉 군락지 산책로 조성'이라는 문구가 적혀있는 전단.

일부 입주민은 분양 당시 공동묘지 이전이 확정됐다는 내용의 광고 전단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시행사 측은 “회사가 배포한 전단이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해당 전단의 출처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분양 대행사 등이 만든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시행사는 문제가 된 전단 배포자를 형사 고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땅집고=서울] 현재 단지 앞 분묘 260여기 중 160여기를 이전해 100여가 남아있다.

시행사 측은 “법적 의무는 없지만 도의적 책임을 지겠다”면서 분묘 이전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실제로 분묘 260여기 중 60% 정도인 160기를 지난 4월 개원한 남도광역추모공원으로 옮겼다. 그러나 단지 앞에는 아직도 분묘 100여기가 남아있다.

시행사 관계자는 “분묘 이전 작업에만 지금까지 아파트 15채와 맞먹는 비용이 들었다”며 “하루 작업량에 한계가 있고 분묘 이전 대상 유족들에게 연락이 안되는 경우도 있어 작업 속도가 더디다”고 했다. 

■ “광고 전단 믿었는데…계약 취소는 어려워”

출처: /입주자 커뮤니티 제공
[땅집고=서울] 입주 초기 아파트 단지 앞 공동묘지.

현행 법에 따르면 공동묘지 등 이른바 혐오시설 주변에서 아파트를 분양하는 경우, 시행사가 수분양자들에게 해당 사실을 꼭 알려줘야 한다. 시행사가 이런 고지 의무를 위반했다면, 수분양자들은 분양 계약을 취소하고 분양대금을 반환받거나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만약 시행사가 아닌 분양대행사 등이 아파트 판매 과정에서 허위·과장 광고한 경우, 업무를 위임한 시행사에게도 책임이 있을까. 현행 법상 분양 전단·카탈로그에 공원 조성·도로 개설·교육시설 유치 등의 내용이 적혀있어도 분양 계약서에 기재되어 있지 않다면 시행사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수분양자가 분양대행사 설명이나 광고만 믿고 아파트를 분양받았다고 해서 시행사에 계약 취소 등을 요구하기는 어렵다.

다만 예외적으로 시행사가 분양 대행사 직원들의 업무에 상당한 수준으로 관여해 표현대리(表見代理· 외형적으로 대리인의 요건을 갖추고 있을 때 대리권이 없는 자의 법률 효과를 본인에게 귀속시키는 것) 등이 인정될 경우에만 시행사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본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수분양자들이 이 같은 사실을 입증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문제다.

이지은 땅집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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