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보러 봄·가을에 다니죠? 겨울에 가야 '민낯'이 보입니다

조회수 2019. 12. 1. 08:1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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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집짓기] 좋은 땅이 겨울에 진면목을 보이는 이유


전원주택 현장에서 사람을 가장 많이 만나는 계절은 봄, 가을이다. 꽃이 만발하고 단풍이 만산홍엽으로 물들 때 사람들은 땅을 보러 나온다. 인생 대사로 치면 땅과 맞선을 보러 나오는 셈인데, 화장발이 가장 잘 받는 계절에 땅을 본다. 하지만 땅은 봄이 오기 전에 봐야 한다. 겨울에 '민낯'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입지에 따라 눈녹는 속도가 확연히 다른 전원주택단지 현장. 겨울이 아니면 땅이 갖고 있는 이런 지력의 차이를 알 수 없다.

■토질과 지하수에 따라 지력 달라져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땅속은 모른다’고 했지만, 땅속에 묻힌 기반시설을 살펴보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땅이 가진 지력(地力)을 보기 위해서도 겨울에 길을 나서야 땅의 진면목을 알 수 있다. 토질과 지하수 흐름에 따라 땅은 스스로 품고 있는 지열의 온도차가 다르다. 눈이 온 뒤에 보면 같은 길에서도 어떤 곳은 눈이 다 녹는데, 얼음장이 될 때까지 눈이 녹지 않는 곳이 있다. 일사량에 따른 차이도 있지만 땅 자체가 갖고 있는 지열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기왕이면 따뜻한 땅이 택지로 당연히 좋다.


산(山) 사진의 대가로 꼽히는 분이 그런 말씀을 한 적이 있다. 산을 찍으려다 보니 능선이 발아래 보이는 정상으로 올라가야 하고, 좋은 그림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다 보면 해가 떨어져서 산중 노숙을 해야 한다. 그럴 때 가장 안전한 잠자리는 무덤 바로 옆이라는 얘기다. 풍수(風水)의 대가들은 길지(吉地)의 조건으로 ‘좌청룡 우백호(左靑龍 右白虎)’의 좌향을 제대로 갖춘 입지도 중요하지만 땅 자체가 갖고 있는 토질이 좋아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묏자리를 쓸 때는 자리를 잡은 후 반드시 땅을 파서 토질을 확인하고 유체(遺體)를 모신다. 죽은 사람의 자리도 그러한데 하물며 산 사람이 터잡을 자리는 두말하면 잔소리다.


따뜻한 땅은 그 자체의 지력도 좋지만 햇빛과 바람의 기운을 제대로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같은 겨울이라고 해도 불어오는 방향에 따라 바람의 찬기운이 천양지차다. 환절기에 어른들 부고(訃告)를 많이 받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계절이 바뀔 때 바람의 기운이 달라지는데, 칼바람의 길목에 집을 지으면 내공이 허약해진 노인들이 이럴 때 현관문을 열고 나서다가 비명횡사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사람의 눈으로 이런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잣대가 눈이 녹는 모습이다.

작가 박범신의 집필실 와초재 입구에 세워진 표지석. '홀로 가득차고 따뜻이 비어있는 집'이라는 설명이 집을 마련하고자 하는 사람의 자세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지력 못지 않게 주변 풍광도 중요


땅의 지력을 살펴보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주변 풍광의 정경(情景)이다. 겨울에 아름다운 풍광은 봄, 가을에도 아름답다. 하지만 봄, 가을에 아름다운 풍경이 겨울에도 아름답다는 보장은 없다. 황량하되 을씨년스럽지 않고, 고독하되 외롭지 않은 풍광을 보여주는 땅에 살면 사람도 그렇게 된다.


소설 ‘시진읍’의 작가 박범신은 고향인 충남 논산에 집필실을 두고 있다. 그 집 입구에 가면 ‘와초재(臥草齋)’라고 새긴 옥호 옆에 ‘홀로 가득차고 따뜻이 비어있는 집’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그의 작품 ‘풀잎처럼 눕다’를 연상시키는 옥호는 이름 그 자체보다 부제에서 더 정감이 느껴진다. 전원주택의 가장 이상적인 모습을 이보다 더 멋드러지게 표현할 수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땅과 집 그 자체로 위용을 보여주려고 한다. 그러나 스스로 채우지 못하면 집은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밑빠진 독과 같다. 스스로 채워진 집은 따뜻하게 비운다. 다 채우면 다 비우게 된다.


스스로를 채우는 작업은 땅을 보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언젠가 경기 용인의 골짜기에 자리잡은 귀거래 거사(居士)를 만났다. 20년도 넘었으니 용인이라 해도 땅값이 10만원대였던 시절이다. 그런데 집터가 고작 400㎡(120평) 남짓이었다. 마침 고만한 밭이 매물로 나왔기에 잡았다고 했다. 외딴 집이었는데도 울타리가 없었다. “무섭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울타리를 치면 내 마당이 120평으로 쪼그라들지만 열어두면 온 산이 내 마당”이라면서 껄껄 웃었다. 그의 말대로 남향받이 그 조그만 집 마당으로 다람쥐와 청설모가 제집 드나들듯 휘젓고 다녔다.

필자의 집 테라스에서 바라본 야경. 전원주택이라고 해서 밤에는 적막강산이 되면 너무 외롭다. 적당한 불빛이 심리적 안정을 준다.

입심이 좋은 그와 막걸리잔을 기울이느라 해가 지는 줄도 모르다가 눈길을 아래 동네로 돌리고 나서 무릎을 쳤다. “이래서 여기로 터를 잡았군요”라고 했더니 힘주어 머리를 한번 주억거렸다. 그는 그 땅을 잡기 위해 세 번 산을 올랐다. 해뜨기 전 아침, 한낮, 해질 무렵. 아래 동네에 하나 둘씩 불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여기가 내 땅’이라고 점찍고 내려왔다. 야경이 그림이었다. 밤이면 적막강산으로 변하는 전원주택에서 밤을 외롭지 않게 해주는 것은 별빛과 발아래 보이는 불빛뿐이다. 불빛이 너무 가까이 있고 밝으면 별빛이 죽는다. 그 둘의 조화가 중요하다.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그는 막걸리잔을 기울이며 어둠이 깔릴 때까지 기다렸다.


땅은 주인이 따로 있다고 한다. 틀린 말이다. 주인은 없다. 마음을 주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고, 아무도 길을 나서지 않을 때 마음을 던지는 사람에게 땅은 문을 연다. 길을 나서라. 봄이 오기 전에.



글= 이광훈 드림사이트코리아 C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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