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땅 책임져"..강남 한복판에 펼쳐진 기괴한 광경

조회수 2021. 4. 16. 14:3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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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집고] 서울시가 지난해 7월 ‘장기미집행 도시공원’으로 일몰제가 적용된 공원 해제 구역 토지를 다시 대거 ‘도시자연공원구역’으로 지정하면서 서울시와 토지 소유자들간의 갈등이 커지고 있다. 서울시는 도시공원 확보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토지 소유자들은 사유 재산권 침해라며 반발하고 있다.

출처: /이지은 기자
[땅집고] 서울 강남구 일원동 대모산자락에 나무에 목을 매단 마네킹 30여구가 줄줄이 걸려 있다.

서울 강남구 일원동 대모산자락에 도시자연공원구역으로 지정된 토지를 소유한 정모씨는 항의 표시로 자신이 소유한 임야에 마네킹을 매달았다. 지하철 3호선 일원역 5번 출구 인근에 있는 로봇고등학교를 둘러싼 산자락에 나무마다 여성 한복을 입은 마네킹 30여구가 보이자 주변에서 혐오스럽고 기괴하다는 민원이 빗발치고 있다. 정씨는 땅집고 통화에서 “서울시가 재산권을 침해하는 바람에, 제가 그렇게 매달리고 싶은 심정이라 마네킹을 달았다”고 말했다.

출처: /이지은 기자
[땅집고] 서울시의 도시자연공원구역 지정에 반대하는 현수막을 걸고 있는 마네킹.

도시공원 일몰제란 사유지를 도시계획 시설상 공원으로 지정했으나, 20년 동안 공원으로 조성되지 않은 땅은 도시공원에서 해제하도록 하는 제도다. 지난해 일몰제 대상은 총 132곳, 118.5㎢였다. 도시공원으로 지정된 땅에선 공원 조성 이외 사업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일몰제가 시행하면 그 동안 꽁꽁 묶였던 재산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토지주들의 기대감이 컸다.


그런데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한 뼘의 공원도 포기하지 않겠다”며 일몰제 대상 도시공원 중 절반 정도인 68곳, 69.2㎢를 용도구역상 ‘도시자연공원구역’으로 묶으면서 토지주들 불만이 빗발치고 있다. 도시자연공원구역은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에 준하는 규제를 받으며 건축물의 건축 및 용도변경, 공작물의 설치, 토지의 형질변경, 토석의 채취, 토지의 분할, 죽목의 벌채, 물건의 적치 등 개발이 전면 제한된다.

출처: /이지은 기자
[땅집고] 도시자연공원구역 지정된 서울 장기미집행 도시공원.

대모산에 토지를 소유한 정씨의 경우, 2014년 공동투자자 500여명과 자금을 모아 일원동의 6만8433㎡ 넓이 땅을 낙찰가 9억3678만원에 경매로 취득했다. 도시공원인 것을 알았지만 일몰제가 얼마 안남은만큼 이 땅에 숲속 테마파크를 개발할 계획으로 취득했다고 했다. 정씨는 “서울시가 토지주 의견도 묻지 않고 마음대로 이 땅을 ‘도시자연공원구역’으로 묶으면서 개발이 전면 불가능하게 됐다”고 말했다.


서초구 말죽거리근린공원에서도 비슷한 마찰이 벌어지고 있다. 이곳은 1970년대부터 도시공원으로 지정돼 토지주들이 50년 가까이 재산권을 행사하지 못했다. 그런데 지난해 7월 돌연 도시자연공원구역으로 지정되자 토지주들이 공원 곳곳에 출입을 막는 현수막·울타리를 세우는 등 시위가 거셌다. 말죽거리근린공원 토지주 중 45명은 지난해 7월 서울시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출처: /이지은 기자
[땅집고] 서울 강남구 일원동 대모산자락에 '개, 돼지 만큼이라도 보상해달라'는 내용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서울시의 ‘도시자연공원구역 처분’을 받은 토지주들은 “이런 식으로 재산권을 틀어 막을 거면 차라리 돈을 주고 서울시가 땅을 사가라”라고 토로하고 있다. 만약 토지주가 도시자연공원구역 지정 전부터 토지를 소유했다면 지자체를 상대로 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 하지만 서울시가 무조건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도시자연공원구역 지정으로 토지 사용 수익을 전혀 낼 수 없다는 점을 입증해야 하는 등 조건이 까다롭다. 정씨는 “땅이 도시자연공원구역으로 지정된 직후인 지난해 6월 감정평가액을 고려해 185억원에 매수청구 신청했는데도 아직까지 서울시로부터 답변을 받지 못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정씨가 설치한 ‘목 매단 마네킹’에 대해서는 인근 학교 학부모들과 주민들의 민원이 거센 상황이지만, 강남구청은 ‘혐오시설이긴 하지만 사유지에 설치한 것이라 지자체가 강제 철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글=이지은 기자 leejin0506@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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