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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에 걸렸지만 그래도, 봄입니다." 대형마트 직원의 고백

조회수 2020. 4. 17. 13:5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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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들과 따뜻한 봄날을 보내는 신세계인들의 이야기

1년 중 가장 아름다운 계절 봄. 흔히 봄을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에 비견하곤 한다. 이 계절이 어느 때라고 아름답지 않았겠나. 하지만 찬란했던 과거 ‘봄날’의 기억은 유독 시리고도 따뜻하다.


창밖은 봄이다. 유난히도 길고 혹독했던 계절을 지나 결국 다시 또 봄이다. 2020년 4월 따뜻하던 어느 봄날, 이태원의 한 스튜디오에서 소중한 ‘나의 봄날’ 이야기를 나누어준 신세계인들을 만났다. 한 시절을 기억하며, 그리고 새로운 한 시절을 기억하려 모인 그들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


Part 1.
이 봄날이 내 인생 마지막 봄인 것처럼,
이마트 펜타포트점 지원팀 오승아 파트너

▍내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인 봄날을 기억하는 사진으로 동료들과 찍은 사진을 보내줬다. 어떤 사연이 있나?


딱 작년 봄이다. 함께 일하던 이마트 펜타포트점 파트너들과 식사하며 찍은 사진이다.

항암 치료가 끝나갈 무렵이었다. 빠졌던 머리카락이 조금씩 자라기 시작했다. 머리가 잔디밭 같았다. 그때는 그런 내 모습이 부끄러워 항상 가리기 바빴다. 하지만 그날 파트너들이 자신들과 함께 있을 때만이라도 편하게 있으라고 말했다. 몇 년 전 처음 암 선고를 받았을 때 함께 울어준 분들이다. 휴직 후 수술하고 항암치료 할 때도 자주 찾아와줬다. 정말 고마운 분들이다.


꽃 한 송이도 보이지 않던 봄이었다. 항암 치료 과정을 버티는 게 너무 힘들어서, 봄이 왔지만 봄이 온 줄 몰랐다. 하지만 그분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제라도 봄을 느낄 수 있었다. 내 눈에는 아픈 내가 너무 못나 보였지만, 그분들은 늘 예쁘다고, 사랑한다고 이야기해줬다.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봐줬다. 덕분에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그래서 그분들과 함께했던 시간을 내가 기억하고 싶은 가장 아름다운 봄날이라 말하고 싶었다.

▍지금도 사진 속 파트너들과 함께 일하고 있나?


항암 치료를 끝내고 바로 복직했다. 이제 1년이 다 되어간다. 아직도 사진 속 파트너들과 함께 근무하고 있다. 여전히 나를 많이 챙겨준다.


항암치료가 끝났지만 나는 아직 암 환자다. 재발 없이 5년이 지나야 완치 판정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회사 생활이 예전과 같지는 않다. 무엇보다 아프다는 사실이 편견의 이유가 된다.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이 먼저 불편해한다. 원래 밝고 쾌활한 성격이지만, 보이지 않는 소외감에 가끔 주눅들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그분들께 쪼르르 달려가곤 했다. 듣기 힘든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늘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달래주고 또 응원해준다. 엄마 같은 분들이다.

▍암 치료를 병행하면서 회사 생활을 하는 게 많이 힘들지는 않나?


우리 주변에는 생각보다 암 환자가 많이 있다. 흔한 질병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암 환자를 보는 시선이 늘 곱지는 않다. 아프다는 것은 단지 개인의 비극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이 남을 불편하게 할 수도 있었다. 나도 투병 생활을 거치며 알게 된 사실이다.


암 환자가 치료를 끝내고 사회에 복귀하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다. 많은 암 환자들은 그냥 숨어버린다. 투병 생활을 거치며 몸도 마음도 약해졌기 때문이다. 나도 복직 결정이 쉽지는 않았다. 몸이 조금 아픈 건 사실이지만, 예전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일 잘 할 수 있다. 불편해하지 않고 남들과 똑같이 대해 주면 좋겠다.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달라. 특히, 회식 때는 꼭 불러주면 좋겠다. 예전처럼 분위기 메이커 노릇 톡톡히 할 수 있다(웃음).

▍어쩌면 지금이 인생의 또 다른 봄날일지도 모른다. 오늘 진행한 촬영 소감을 들려달라.


나에게 미래는 없다. 오직 현재만 있다. 그래서 지난봄이 너무 행복했던 내 인생의 ‘봄날’이라 말할 수 있었다. 그 봄이 그때의 내게 마지막 봄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또 봄이 왔다. 이 봄도 어쩌면 내 인생의 마지막 봄일 수 있다. 물론 보통 사람들은 공감하기 어려울 것이다. 암 환자는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 그래서 더 소중하고 아름답다. 사실 지금 자존감이 많이 낮다. 투병 생활을 거치고 나니 예전만큼 사람들 앞에 나서기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의 봄날을 예쁘게 남기고 싶은 마음에 용기 냈다. 더없이 소중한 지금, 이 순간을.


Part 2.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던 좋은 시절을 기억하며,
이마트 김포한강점 생활팀 임현숙 파트너

▍내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인 봄날을 기억하는 사진으로 동료들과 함께한 기념사진을 여러 컷 보내줬다. 어떤 사연이 있나?


맞다, 대부분이 동료들과 함께 남긴 기념사진이다. 10년도 더 전에 검품 파트에서 근무하던 시절, 파트장님과 동료 파트너들과 촬영한 사진. 입사 20주년을 맞아 동기들과 촬영한 사진…

지금 들고 있는 사진은 검단 이마트에서 근무하던 시절의 사진이다. 점포 행사 후 근무하는 파트너들을 모두 모아 촬영했다. 동료들과 남긴 기념사진 중 최대 인원이 등장한 컷이다. 사진 속 파트너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행복함이 가득하다.


사실 누구나 그렇듯, 직장생활이 특별하기는 참 어렵다. 그래서 동료들과 함께하는 사진을 더 많이 남기려 노력한다. 인연이란 지구상 어느 한 곳에 조그만 바늘 하나를 꽂아놓고 하늘에서 밀씨가 나풀나풀 떨어져서 그 바늘 위에 꽂힐 확률, 그 계산할 수도 없는 확률로 이루어진다.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에 나온 대사다. 내게는 동료들이 바로 그 인연이다.


예전부터 동료들과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이벤트에 응모하는 것을 좋아했다. 함께 추억할 거리가 생기니까. 추억 부자가 가장 큰 부자 아닌가. 올해로 입사 23년 차인데, 요즘은 더하다. 기념사진을 더 많이 남기고 싶다. 이마트도 나도 그리고 함께 일해온 동료들도 모두 나이가 들었다. 언젠가 이마트를 떠나는 날이 오더라도 이마트에서 일하던 매 순간순간을 기억하고 싶다. 먼 훗날 돌이켜봤을 때 귀한 인연의 사람들과 함께하던 이 시절이 나의 봄날일 테니까.

▍주변 동료들을 정말 살뜰하게 챙기는 것 같다


사실 내가 공유한 사진에 특별한 사연이 있지는 않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직장생활. 이는 어쩌면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흔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동료들은 곧 내 자신이라 생각한다. 후배를 보며 나의 과거를 보고, 선배를 보며 나의 미래를 본다. 동료들의 행복은 나 자신의 행복과 연결되어있다 생각한다. 그래서 동료들에게 더 애착을 가지는 편이다.


예전 이마트 전단 캐치프레이즈 중 ‘같이의 가치’라는 문구가 있었다. 그걸 보자마자 생각했다. 이게 내 마음이구나. 사실 직장에서 동료들은 같은 곳을 향해 나아간다기보다, 같은 마음으로 나아가는 것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모두 같은 마음으로 이마트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래서 힘든 일이 있으면 더 도와주고 싶고, 즐거운 일이 있으면 더 나누고 싶은 게 아니겠나.

▍오늘 촬영도 동료와 함께했다. 동료 파트너와 함께 사진을 남기려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특별히 봄날의 사연과 이어진 것은 아니다. 다만, 동료인 천송이 파트너에게 기분전환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고 싶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많이 힘들어했다. 송이 파트너에게 조금이나마 힘을 주고 싶었다. 송이 파트너가 사진 찍는 걸 정말 싫어한다. 그런데도 오늘 활짝 웃으며 함께 즐거운 시간 보냈던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촬영을 준비하는 시간부터 즐거웠다. 이런저런 컨셉도 생각해보고 소품도 챙겨봤다. 우리 딸이 극구 반대했던 복고 컨셉 소품도 챙겨왔다(웃음).


이 자리를 빌려 송이 파트너에게 이야기해주고 싶다. 엄마는 어디로 떠난 것이 아니라, 어디에나 있다고. 그리고 앞으로 너를 아껴주는 모든 사람이 또 다른 엄마가 되어줄 거라고. 그리고 언젠가 엄마와 다시 만날 테니, 이제 다시 맘껏 행복해도 된다고.


아이러니하게도 봄은 한 시절에 머물지 않는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다시 돌아 봄이다. 하여 기억 속 과거의 봄이 아름답듯이 현재의 봄 또한 훗날 돌아봤을 때, 사무치게 아름다울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창을 열고 봄을 맞을 것, 과거가 아닌 지금의 봄날을 사랑할 것, 그리고 다신 돌아오지 않을 지금의 봄날을 만끽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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