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정기술] 어둠을 밝히는 1리터의 빛

조회수 2020. 2. 18. 09:00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밤이 어두운데 낮마저 어두우면 어찌하오리까

상식은 차별적이다. 우리가 쉽게 '이건 상식이잖아'라고 생각하는 것이 다른 이에게는 통용되지 않을 수 있다. 가령 낮은 밤보다 밝다. 집 안에 있어도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채광을 고려해 집을 지었기 때문이다. 만약 실내가 어둡다면 버튼만 누르면 된다. 전등이 켜지고 어두운 방안을 밝힌다.

과거 필리핀 빈민촌에서는 이것 또한 상식이 아니었다. 대부분 판자로 지어진 집은 조밀하게 붙어있다. 태양빛을 판잣집이 서로 가린다. 채광이 좋지 않다. 낮에도 항상 그늘져 밤 못지않게 어둡다. 빈민가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으니 전등을 켤 수 있을 리 만무하다.

상식의 괴리를 조금이라도 줄여줄 수 있는 기술은 없을까. 브라질 출신 기계공이자 발명가인 알프레도 모저도 이러한 고민을 했을 터다. 그는 1951년 브라질 남부 산타 카타리나에서 태어났다. 미나스 제라이 주 우베라바시에서 정비소를 열어 운영했다.

2002년 전력 수급이 안정적이지 못했다. 그의 정비소에서도 잇따라 정전 사고가 발생했다. 실내가 어두워 낮에도 일을 하기 어려웠던 그는 정비소와 집을 밝힐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그것이 바로 '페트병 전구(Solar Bottle)'다. 그의 이름을 따 '모저 램프'라고도 불린다.

페트병 전구는 간단하게 만들 수 있다. 우선 투명한 페트병을 준비한다. 그리고 깨끗한 물을 넣고 표백제나 세제를 약간 첨가한다. 그리고 지붕에 구멍을 뚫어 박아두기만 하면 된다. 절반은 지붕 밖으로 나머지 절반은 집안으로 노출되게 설치한다.

원리는 빛의 굴절, 산란, 반사다. 지붕에 구멍을 뚫으면 햇빛이 들어온다. 하지만 각도가 제한적이다. 햇빛이 집 안으로 들어오는 범위도 작다. 햇빛이 들어오는 부분에 페트병 전구가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표백제와 물을 담고 있는 투명한 페트병에 빛이 닿으면 빛이 굴절되고 내부서 산란된다. 매질이 달라져 일부 반사되기도 한다. 투명한 병 안으로 들어온 빛은 지붕 경계선을 지나 집 안에 빛을 퍼트린다.

단순한 원리에 비해 효과는 강력하다. 태양빛이 강할 때 이 페트병 전구 하나가 55와트급 전구 밝기와 맞먹는다고 한다. 낮에도 빛을 보지 못하는 집안사람들이 일반적인 생활을 영위하기에는 충분하다.

페트병 전구는 다양한 방법으로 효율을 높일 수 있다. 우선 페트병이 클수록 효과적이다. '어둠을 밝히는 1리터의 빛'이라고 했지만, 사실 1리터보다 더 큰 페트병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보통 1.8리터 투명 페트병을 추천한다. 더 커도 좋지만, 지붕이 페트병 전구의 무게를 견뎌야 한다. 빈민가의 집 지붕은 대부분 함석이나 슬레이트가 많다. 지붕이 튼튼하지 않다. 너무 무거운 페트병 전구 때문에 지붕이 무너지거나 깨질 수 있다.

표백제 역할도 중요하다. 빛이 표백제 성분과 만나 더 잘 흩어질 수 있다. 또 표백제는 물 안에 박테리아나 이끼가 생기는 것을 막는다. 페트병 전구를 보다 오래 사용하게 한다. 깨끗한 물 대비 표백제 양은 1~2% 정도가 적당하다. 적정량의 표백제를 넣은 페트병 전구는 보통 10개월에서 최대 5년까지 간다.

페트병 전구를 설치할 때도 효율을 높이는 방법이 있다. 바로 금속 판이나 알루미늄 호일을 페트병 주위에 부착하면 된다. 물론 지붕 위 부분이다. 금속 판이나 알루미늄 호일에 닿은 빛이 반사돼 페트병 전구 안으로 들어오는 빛의 양을 늘릴 수 있다.

여타 적정기술이 그러하듯, 이 페트병 전구를 세계에 공급하는 프로젝트가 존재한다. '리터 오브 라이트(Liter of Light)'다. 필리핀 마닐라에 본사가 있는데 마이셸터 재단(MyShelter Foundation)의 지원을 받고 있다. 페트병 전구를 오픈소스화해 보다 쉽고 저렴하게 제작하도록 한다. 리터 오브 라이트 프로젝트는 현재 15개국 35만3000가구에 이 페트병 전구를 공급했다.

프로젝트는 페트병 전구가 가진 태생적 한계 극복에도 집중하고 있다. 바로 낮에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태양빛이 있어야 만 페트병 전구가 제 역할을 한다. 이 때문에 밤에는 무용지물이다. 저렴하고 크기가 작은 소형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저전력 LED 전구에 페트병을 갓처럼 씌워 전등으로 활용할 수 있다. 리터 오브 라이트 프로젝트에서는 이러한 형태의 태양광 전등을 가로등으로 활용하는 방법도 제안하고 있다. 집 안뿐만 아니라 밖에서도 안전한 삶을 살게 해주는 적정 기술이다.

테크플러스 에디터 권동준

tech-plus@naver.com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