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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나온 애플워치 시리즈5, 써봤습니다

조회수 2019. 11. 19. 11:3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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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여러분. 애플워치 사용 5년차인 에디터H다. 바깥 외출을 잘 하지 않아서일까, 나는 피부가 잘 타지 않는 편이다. 여름이라고 휴가를 가는 스타일도 아니기 때문에 일년 내내 하얗다. 그런데 시칠리아 바닷가 마을에서의 한 달살기는 내 살갗도 태우기에 충분한 환경이었다. 서울로 돌아와보니 유독 왼쪽 손목에만 하얀 자국이 남았다. 애플워치 자국이다. 손목시계라면 답답해서 질색하던 내가 언제 이렇게 됐을까. 벌써 5년. 시계를 1년 마다 바꾸는 경우는 흔치 않겠지만, 어쩌다 보니 매년 시리즈를 갈아치우며 살아왔다. 그리고 서울 공기가 차가워진 지금, 시리즈5를 맞이할 시간이다.

애플워치 시리즈4와 시리즈5는 똑같이 생겼다. 첫눈에 둘의 차이를 구분하기 쉽지 않을 거다. 시리즈3에서 시리즈4로 넘어가던 때의 드라마틱한 변화를 기대했다면 실망할지도.

가장 큰 변화는 화면이 꺼지지 않는다는 것. 움직임 없이 가만히 워치를 차고 있을 때 화면이 한 톤 어두워진 상태로 그대로 켜져있다면 신제품이다. 우리가 흔히 AOD(Always On Display)라고 부르는 상시표시형 디스플레이다. 화면이 하루종일 켜져있다고 하면 제일 먼저 걱정되는 게 배터리다. 애플워치 써본 분들은 알겠지만 하루를 버티기에는 전혀 무리가 없지만, 어쨌든 매일 충전을 해야 되는 기기다. 여기서 배터리 시간이 줄어들기라도 하면 하루를 쓰기 어려워질 수도 있단 얘기다. 아마 5세대가 되어서야 항상 시간이 보이는 시계가 된 것도 배터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겠지.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애플워치 시리즈5는 초절전 LTPO 디스플레이의 사용으로 상시표시형 디스플레이를 구현할 수 있게됐다. 풀어 말하자면 저온폴리실리콘산화물인데 이렇게 말하니 더 어려워진다. 기존 디스플레이는 화면 재생률이 60Hz로 계속 구동되어야 밝기 저하 없이 화면을 표시할 수 있는데, 60Hz로 하루 종일 화면을 켜두면 배터리가 쭉쭉 닳아서 금세 죽어버릴 게 아닌가. 그래서 시계를 적극적으로 사용하지 않을 땐 화면 재생률을 1Hz까지 극단적으로 떨어뜨리는 거다. 당연히 전력 소모량도 극도로 낮아진다. 사실 단순히 LTPO만 적용한다고 가능한 일은 아니다. 이 초절전 디스플레이는 애플워치 시리즈4에도 전력 효율 향상을 위해 적용됐던 바 있다. 여기에 주변광 센서와 저전력 드라이버, 초고효율 전원 관리 시스템을 유기적으로 활용해 디스플레이가 항시 켜진 상태에서도 이전 모델처럼 최대 18시간의 배터리를 지속할 수 있는 것.


이제는 애플워치 시리즈5의 AOD가 어떤 방식으로 구현되는지를 설명해야겠다. 화면이 쨍한 최대 밝기 상태를 눈을 부릅뜬 것에 비유하자면, 애플워치가 하루종일 눈을 크게 부릅뜨고 있는 것은 아니다. 주인이 찾을 땐 눈을 최대한 크게 떴다가, 부르지 않을 땐 반쯤 감고서 기다린다고 보는 게 맞겠다.


애플워치에는 수 백 가지 조합으로 사용할 수 있는 워치 페이스가 있다. 각각의 페이스는 시간만 표시하거나 다양한 컴플리케이션을 띄워 원하는 정보를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커스터마이즈할 수 있다. 하다못해 초침의 컬러도 수십 가지로 바꿀 수 있을 정도다. 애플워치 시리즈5에 상시표시형 디스플레이가 적용되며 각각의 페이스에 맞는 ‘비활성화 디자인’이 추가됐다.

[위가 활성화했을 때, 아래가 비활성화 화면]

예를 들면 이렇게 볼드한 숫자 폰트로 시간만 직관적으로 표시하는 ‘숫자 듀오’ 페이스를 보자. 본래는 숫자 안이 가득 색칠되어 있지만 일정 시간 동안 터치하거나 사용하지 않아 비활성화 화면이 되면, 화면이 약간 어두워지고 숫자 안이 까맣게 비어있는 디자인으로 변경된다.

초침이 움직이던 페이스는 초침을 생략하고 분침과 시침만 표시해준다. 애니메이션을 없애고, 화면에 활성화된 픽셀을 최소화해서 전력 소모를 줄이는 원리다. 워치 페이스 디자인이 상당히 다양한데 각각에 맞게 시나리오를 마련해두었다는 게 흥미롭다. 눈치채기 어려운 사소한 부분에 과한 공을 들이는 게 애플답다. 운동 앱을 활성화한 상태에서 비활성화 화면으로 들어가면, 밀리 세컨 단위는 가려진다. 각각의 활용도에 맞게 정말 필요한 정보면 보여줄 수 있도록 최적화해두었다는 얘기다. 단순히 초침만 멈추는 게 아니라 소음 앱 같은 네이티브 앱의 컴플리케이션 움직임도 비활성화된다.

[대표님한테 소리 내보라고 하니 바로 데시벨이 올라감]

원래 소음 앱은 실시간으로 주변 소음을 측정해 수치를 지속적으로 보여주는데, 비활성화 화면 상태에서는 그냥 까맣게 표시된다. 하지만 진짜 활동을 멈추는 건 아니다. 백그라운드에서는 지속적으로 정보를 받아들이고 기록하고 분석하게 된다. 화면에 표시되는 영역의 움직임을 최소한으로 줄여 배터리 소모를 막을 뿐이다.


다시 화면을 톡톡 터치하거나 자연스럽게 손목을 들어 올리면, 화면이 살짝 일렁거리며 멈춰있던 세상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처럼 초침이 움직이고 컬러가 살아나며, 컴플리케이션이 반응하기 시작한다. 이 순간의 반응이 상당히 우아하고 재미있다.

[예를 들면 요가를 하고 있다던지…]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을 가질 분도 있을 것이다. 여태까지 애플워치 멀쩡하게 잘 써왔는데 화면이 꺼지지 않는 게 그렇게 중요한가? 꼭 필요한가? 글쎄, 애플도 여러가지 시나리오를 구상해봤을 것이다. 자전거를 타거나 운전 중에 굳이 손목을 들어 올려서 화면을 활성화해야 하는 제스처가 위험할 수도 있고, 손목을 들어올리는 게 아이폰을 꺼내서 화면을 보는 것만큼이나 노골적인 순간도 있다. 혹은 플랭크 같은 복근 운동을 하면서 대체 몇 초가 지났을까 궁금해지는 순간도 있겠지. 몸을 전혀 움직일 수 없는데 시계는 보고 싶은 그때에! 물론 운동을 한 지 너무 오래되어서 이런 예를 드는 게 머쓱하긴 하다.


좀 더 현실적인 예를 들어보자. 나의 경우엔 미팅 중에 애플워치가 ‘지잉’ 울려도 쳐다보는 게 힘들다. 흘낏 쳐다봐서 보는 거면 모를까, 손목을 들어올려서 시계를 보는 행동은 너무 무례해 보일 것 같아서다. 게다가 일반적으로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는 건 시간을 확인하는 행위를 뜻한다. 마치 바쁘거나 시간이 없어서 상대방을 보채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런 이유로 나는 이 문명의 혜택을 손목에 두르고도 “대체 무슨 알람이 왔을까…”하고 속앓이만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젠 화면이 항시 켜져있으니 손목을 움직이지 않고 슬쩍 눈만 내리깔아서 보고 오는 것도 가능하겠다.

[이 예쁜 에르메스 로고가 몇 초 지나면 꺼집니다ㅠㅠ]

이렇게 계속 켜진 화면이 유리한 경우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애플워치 에르메스 모델 사용자들의 마음을 더 흐뭇하게 해준다는 거. 비싼 돈을 주고 에르메스 버전을 사서 1년째 쓰고 있지만, 이게 참 티가 안 난다. 편의에 따라 스포츠밴드 같은 다른 밴드로 교체하면 더더욱 그렇다. 하다못해 에르메스 워치 페이스라도 하루종일 떠있으면 희미하게 로고가 보이지 않겠어? 남의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내 눈에 자꾸 보이면 흐뭇할지도 모른다. 이건 결국 내 마음을 위한 허영이니까.

[하지만 알루미늄은 흠집이 잘 생기지 않죠…]

얘기가 나온 김에 볼멘소리를 하자면 애플워치 시리즈4 에르메스 모델을 써왔던지라 묵직하고 광택이 아름다운 스테인리스 스틸 모델에 길들여져 있었다. 한국에 돌아와보니 시리즈5 에르메스 모델은 이미 품절 상태. 눈물을 삼키고 지갑 사정에도 더 걸맞은 알루미늄 모델을 취했지만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 뭐랄까, 알루미늄 모델은 스포츠 모델의 이미지가 강하다. 가볍고 편하지만 시계로서 가져야 할 화려함이 부족하다. 이건 취향에 따라 다를 수도 있겠다. 스테인리스 스틸 모델은 무거워서 손목에 피로도가 있다는 사람도 있으니까. 기존에 가지고 있던 밴드와 컬러 매치가 쉽도록 실버 모델을 택했다.

물론 상시표시형 디스플레이에 장점만 있는 건 아니다. 애플워치 화면 위에는 수시로 메일이나 문자, 스케줄 등의 개인정보가 표시될 텐데 내 옆에 있는 누군가가 그걸 빤히 쳐다보고 있다면 소름끼치는 일이니까. 그런 경우를 위해서 설정에서 ‘민감한 컴플리케이션 가리기’를 활성화해두면 된다. 손목을 들거나 화면을 터치로 깨울 때가 아니면 다음 스케줄이나 메시지 내용 같은 것들은 평상시엔 블라인드처리 된다.

사진처럼 평상시에는 다음 스케줄에 ‘캘린더’라고만 나와있다.

손목을 들어서 화면을 깨우면 다음 스케줄이 표시된다. 애석하게도 저날 저녁 약속은 취소됐다. 이건 TMI.


화면 밝기를 다루는 방식도 더 세밀해졌다. 시리즈4와 비교했을 때 최대 밝기 자체가 달라진 건 아닌데 주변광 센서가 주변 빛을 파악해서 디스플레이 밝기를 조절할 때의 레인지가 좀 더 정교해졌다.

생리, 음성 메모, 계산기 등의 앱이 컴플리케이션으로 올라온 것도 작지만 편리한 변화다. 인터뷰할 때 음성 메모를 쓸 일이 가끔 있는데 스마트폰으로 조작하는 것보다는 애플워치로 하면 훨씬 좋다. 녹음 때문에 폰을 조작하기 어려워지는 일도 없고 말이다.

[하지만 저는 더치페이를 잘 하지 않습니다, 대표님이 사주시거든요]

애플워치 화면에 띄워놓은 계산기 앱 역시 귀여워 까무러칠 수준. 통통한 내 손가락으로도 충분히 쓸 수 있었으니 폰을 꺼내기 번거로울 만큼 급할 때 단순 계산하는 용도로 활용하면 좋겠다. 예를 들어 유럽에서 쇼핑하면서 환율을 미리 적용해본다든지, 더치페이를 한다든지. 유로 환율 계산이 어려워서 어림잡아 150만 원인 줄 알고 산 물건이 180만 원에 결제됐던 경험이 며칠 전에 있는지라 반갑다.

나침반 앱도 컴플리케이션에 꺼내둘 수 있다. 나침반 화면에서 길게 터치하면 방위를 설정해두고 그 방향에서 얼마나 벗어났는지를 빨간 바로 확인할 수 있다. UI도 너무 예쁘고 부드럽게 반응하는 것도 좋은데, 처음에 언박싱해서 한 번 실행해본 이후로 나침반은 쓸 일이 없다. 나는 지나치게 도시의 여자. 동서남북 따위 확인할 일이 앞으로도 있으려나….

[어머, 정신을 차리니 다 바꿨네…]

내가 사용중인 실버 알루미늄 케이스 40mm 셀룰러 모델의 가격은 65만 9,000원. 셀룰러를 지원하지 않는 GPS 모델은 53만 9,000원이다. 가격이 부담된다면 애플이 얌체처럼 구형 모델인 시리즈3를 25만 9,000원부터 판매하고 있으니 그 쪽을 고려해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게 시리즈4가 아니라 시리즈3라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2세대를 건너뛴 재고니 이 정도 가격에 판매하는 게 합당하단 얘기다. 애플워치 시리즈3에서 시리즈4로 건너갔을 때의 업그레이드가 워낙 드라마틱했기 때문에, 기왕 구입할 거라면 눈 딱 감고 시리즈5로 오시는 걸 추천드린다. 가성비를 계산할 때는 앞으로 현역으로 얼마나 뛸 수 있는지도 포함되어 있을테니까. 하지만 시리즈4를 쓰고 있는 분이라면 슬며시 참아도 괜찮겠다. 쓰다보면 분명 눈에 들어오고 마음에 들어오는 변화가 있지만, 지금 쓰는 것도 충분히 좋으니까. 근데 나는 왜 바꿨냐고? 여러분에게 이 결론을 알려드리려고 그랬다. 에르메스 로고가 없는 건 아쉽지만, 시리즈의 상시표시형 디스플레이에 이미 적응을 해버려서 화면이 꺼지는 애플워치로 돌아가진 못할 것 같다. 이렇게 또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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