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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봉테일! <기생충>에 들어간 사운드의 비밀은?

조회수 2020. 2. 12. 14:4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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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에디터H다. 항상 자기연민과 국뽕을 경계하며 살아왔지만, 이번만큼은 취하지 않기가 힘들다. 온 세상이 <기생충>과 봉준호를 외치고 있으니까. 어제 미팅가는 길에 택시를 타자마자 기사님이 “<기생충>이 아카데미 4관왕이래요!”라며 속보를 전한다. 아주 들뜬 목소리로. 그때부터 소셜 미디어 타임라인엔 봉준호 감독의 수상소감을 기승전결로 나눠 숨소리까지 분석한 글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구글 CEO의 트위터에 한국어 트윗이 올라왔을 정도니 말 다했지. ‘축하합니다 Bong joon-ho’. 심지어 오늘 출근길 라디오에서는 봉준호 감독의 누나가 나와 인터뷰를 하더라.


콘텐츠 만드는 사람으로서 이 찬란한 ‘기생충 붐’에 편승하고 싶은 마음을 거둘 수 없다. 그래서 슬쩍 밥숟갈을 얹어 보련다. 물론 오늘 내가 하려는 이야기는 <기생충>이나 봉준호 감독, 아카데미 시상식에 대한 건 아니다. 난 영화는 잘 모르니까. 물론 <기생충>은 재밌게 봤고, 기억에 남았다. 작년에 봤던 영화 중에 제일 좋았던 것 같다. 하지만 가타부타 떠들어댈 만한 주제는 못된다.

[©A.M.P.A.S.®,]

오늘 나의 주제는 돌비 애트모스다. 돌비라는 회사의 음향 기술말이다. 전부터 다뤄보고 싶은 기술이었는데, 지금만큼 좋은 타이밍이 있을까 싶다. 왜냐면 영화 <기생충>에도 돌비 애트모스 기술이 적용됐기 때문이다. 이렇게 엮으면 제목을 ‘아카데미 4관왕에 빛나는 영화 <기생충>ㅌ에 들어간 그 기술은?’이라고 뽑을 수 있겠지. 그냥 ‘돌비 애트모스 기술을 알아보자’라고 제목을 달면 아무도 이 글을 읽어주지 않을 것 같다.


사실 정확한 개념은 모르더라도 많이 들어보셨을 것 같다. 돌비, 돌비 애트모스, 돌비 비전 뭐 이런 것들. 영화관에만 가도 ‘돌비 애트모스관’이 따로 있지 않나. 대충 뉘앙스는 추측이 가실 거다. 뭔가 영화를 좀 더 생생하고 실감나게 볼 수 있는 썸띵 뉴 테크놀로지… 놀랍게도 그 추측이 맞다. 돌비 애트모스는 돌비가 개발한 서라운드 사운드 시스템이다. 전방위 입체 음향을 구현할 수 있어서 영상물에 대한 몰입도를 높여준다. 본래 2012년에 영화 <메리다와 마법의 숲>에서 처음 선보였는데, 최근에는 노트북이나 태블릿, 스마트폰 등의 개인 기기에도 적용되어 이 좋은 걸 방구석에서도 즐길 수 있게 됐다.

그러면 돌비는 대체 뭐하는 회사인지 궁금해지실 수 있다. 어쩐지 익숙한 이름이 아닌가. 집에 가보면 전자제품 본체나 박스 어딘가에 돌비 마크가 붙어있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렇다면 돌비는 전자 기기를 만드는 회사일까? 아니다. 노트북마다 인텔 스티커가 붙어있지만 인텔이 노트북을 만들지 않는 것처럼, 돌비도 마찬가지다. 이 회사의 정확한 이름은 ‘돌비 래버러토리스’. 직역하면 돌비 연구소다. 엔터테인먼트 경험을 향상시킬 수 있는 기술을 연구하는 회사다. 제품은 안 만들고 그런 연구만 해서 어떻게 먹고사나 걱정이 되는 분도 있겠지만, 돌비는 수 천개의 특허를 가지고 있고 그 라이선스를 널리널리 판매해서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 돈 워리.

[제 92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이 개최되었던 돌비씨어터]

<기생충>으로 시작해 조금씩 다른 길로 여러분을 유인(?)하고 있지만, 기왕 TMI를 시작한 김에 조금만 더 들여다보자. 어쩌면 여러분은 돌비라는 회사가 어떻게 입체 음향 시스템을 만들기 시작했는지 궁금해졌을지도 모르니까. 영화 산업이 막 시작되었을 때만 해도 사운드에 대한 기술도 인식도 매우 열악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오디오 테이프를 사용했는데 합성과 편집 과정에서 잡음이 심해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다 1965년에 레이 돌비 박사가 회사를 만들어 효과적인 잡음 억제 기술을 만든다. 이게 돌비사의 시작이다. 그 뒤에는 입체음향 기술 개발로 눈을 돌린다. 1970년대 당시에는 2채널 스피커로 구현하는 스테레오 방식이 최선이었는데, 1975년에 중앙과 후방 스피커를 추가한 ‘돌비 스테레오’ 기술을 선보이며 주목받는다. 이때까지는 명칭처럼 좌우소리를 구분하는 스테레오 사운드에 불과했다.


1992년에 5.1채널을 기반으로 하는 ’돌비 디지털’이 발표된다. 5.1채널은 5개의 위성 스피커와 1개의 서브 우퍼 스피커를 결합한 개념이다. 서브 우퍼가 0.1채널로 표기되는 건 저역대만 담당하는 특성 때문. 팀 버튼의 영화 <배트맨 리턴즈>에 돌비 디지털 포맷이 처음 적용된 것으로 유명하다.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서라운드 음향의 시작이라고 보면 된다. 현재도 널리 사용하는 기술이기도 하다. 그런데 돌비 디지털에는 영화관에서 결정적인 약점이 있다. 스피커와의 거리를 계산했을 때 특정 자리에 앉았을 때만 가장 효과적인 서라운드 사운드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좋게 말하면 이렇고, 나쁘게 말하면 뒤늦게 예매한 가장자리 좌석은 사운드 효과가 떨어진다는 뜻이다.

그래서 돌비 연구소는 또 연구에 들어간다. 어느 자리에서나 균일한 사운드를 표현할 수 있도록. 그 결과물이 바로 오늘의 주인공 ‘돌비 애트모스’다. 이제까지의 사운드 포맷은 채널 위치 기반으로 소리를 분류해서 들려줬는데, 돌비 애트모스는 화면속 오브젝트의 움직임에 따라 변화하는 객체 지향의 입체 음향이라는 것이다. 화면에서 움직이고 있는 오브젝트의 소리를 메타데이터로 저장해, 사운드 작업 과정에서 어디든지 배치하고 움직이며 믹싱할 수 있다. 창작자의 자유도가 높으며 훨씬 실제에 가까운 현장감을 제공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한 문장, 한 문장 고심하며 설명해봤지만 두 번 읽어봐도 어렵다. 쉽게 설명하자면 이전까지의 다채널 오디오 포맷에서는 화면 속에서 나는 소리의 ‘대상’이 없었다. 주인공이 구두를 신고 걸어간다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동하는 ‘어떤 소리’가 녹음된 것이지, ‘구둣 소리’라는 대상은 없었던 것이다. 돌비 애트모스에서는 각각의 사운드를 객체로 분리하고 각 객체의 메타데이터에 공간 정보를 포함하고 있다. 해당 오브젝트의 화면 속 움직임에 맞게 소리의 궤적도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된다. 그래서 사운드가 채널에 갇히지 않고 3차원으로 구현되어 온사방에서 소리가 느껴지는 놀라운 현실감을 전달하는 것이다. 스피커의 배치도 새로웠다. 기존에는 청취자의 전후좌우에만 스피커가 위치했는데, 천장에도 스피커를 추가해 360도 입체 음향을 구현했다.

이제 다시 기생충 이야기로 돌아와보자. 여러분이 아직 따라와주셨다면 말이다. 봉준호 감독은 넷플릭스를 통해 선보였던 영화 <옥자>부터 4K 촬영과 돌비 애트모스를 적용했다. 그 노하우는 그대로 <기생충>으로 이어진다. 실제로 사운드 퀄리티에 대한 집착이 있는 편이기도 하더라. 사실 돌비 애트모스의 입체음향을 지원한다고 하면 보통 스펙터클한 액션물을 떠올리기 쉬운데, 그런 장르에서만 서라운드 사운드가 위력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다. <기생충>에서도 인물들의 결을 살리고 그들이 살고 있는 동네의 서로 다른 느낌을 뒷받침해주는데 사운드가 큰 역할을 했다.


공간마다 고유하게 갖고 있는 특징적인 사운드가 있는데, 기생충에서는 판이한 장소에서 살아가는 두 가족의 공간을 소리로도 섬세하게 묘사했다. 공간 뿐만 아니라 시간대별로 다르게 표현됐을 정도다. 영화는 동네의 온갖 소음이 들려오는 기택(송강호)의 반지하 집에서 시작한다.

배경이 박 사장(이선균)의 집으로 바뀌면서 갑자기 소음이 걷히고 고요해진다. 기택의 집에서는 공간이 매우 협소하다는 걸 표현하기 위해 대사에서 공간의 에코가 느껴지지 않게 했고, 박 사장의 큰 저택에서는 대사마다 공명감이 느껴지게 표현했다더라.

상상력을 소리로 옮기는 과정에선 돌비 애트모스의 믹싱이 효과적으로 쓰였다. 이런 디테일을 알고 다시 영화를 본다면 소리가 완전히 다르게 들릴 것이다.


이제는 영화관이 아니라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같은 휴대 기기에서도 돌비 애트모스를 경험할 수 있다. 갤럭시 S10시리즈나 갤럭시 노트10, 아이폰 11시리즈 처럼 흔히 쓰는 스마트폰에도 들어가 있을 정도다. 물론, 모바일에 들어간 돌비 애트모스는 최대 128개의 오디오 트랙과 64개의 오디오를 제어할 수 있는 시네마 포맷과는 다르다. 스마트폰에 달린 스테레오 스피커로 360도 입체 음향을 표현하는 것으로, ‘가상 입체 음향 기술’에 가깝다. 하지만 스마트폰 스피커로 표현되는 공간감은 생각보다 꽤 실감나다. 최근에는 넷플릭스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돌비 애트모스를 지원하는 콘텐츠에 대한 접근성도 높아졌다. 나 역시 모바일 기기에서 스트리밍 서비스로 콘텐츠를 감상하는 비율이 높아졌다. 사운드나 화질이 충분히 만족스럽기 때문이다. 넷플릭스에서 돌비 애트모스를 지원하는 드라마를 보고 있었는데 헬리콥터가 날아오는 장면에서 소리가 내 뒷통수부터 들리는 것 같은 착각 때문에 깜짝 놀란 적이 있을 정도다.


<기생충>은 이제 상징적인 작품이 되었다. 이 영화를 둘러싼 수많은 인물과 요소들이 주목받고 있는데, 그 중에는 이런 기술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영화 장면 마다 감독의 의도에 맞게 소리가 발생하는 위치에 사운드를 배치할 수 있다. 현장감 넘치는 사운드를 통해 영화의 스토리텔링은 더욱 견고해진다. 등장인물들의 사는 형편과 그 공간감까지 소리에 담아낼 수 있는 기술. 얼마나 재미있는 시대인지. 화면 앞에서 눈을 감으면 사방에 소리가 가득하다. 진짜보다 더 진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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