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힙쟁이를 위한 진짜 서울 막걸리

조회수 2020. 2. 14. 11:2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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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후천적 도시 남자 에디터B다. 요즘 꽂혀있는 키워드 ‘서울’이다. 나는 서울이 꽤 매력적인 도시라고 생각한다. 일단 이름부터 멋있다. SEOUL, 쏘울(soul)처럼 들리기도 한다.


연남동, 성수동, 해방촌에는 각자의 힙을 뽐내는 가게들이 뚝딱뚝딱 만들어지고 있고, 을지로에는 설렁탕과 불고기, 평양냉면을 파는 노포가 건재하다. 학교 동창들은 서울살이에 지쳐 지방으로 떠났지만, 난 아무래도 이 버라이어티한 도시가 쉽게 지겨워질 것 같지가 않다. 생각해보니 이곳에 산 지 10년이 넘었더라. 이제는 여기가 고향보다 더 아늑할 정도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을지로 진고개에서 갈비찜에 테라를 한잔 하다가 문득 ‘서울의 술’은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서울의 술이라, 굉장히 포괄적이고 추상적인 말이다. 음.. 풀이하자면 서울의 이미지를 잘 담았으며, 서울에서 나는 재료로 담근 술이 아닐까. 일단 맥주는 패스해야 할 것 같았다. 전 세계 어디에 가도 있는 술이니까. 그럼 초록병 소주는 어떨까. 이것도 좀 곤란하다. 서울을 대표하는 술이라는 하기엔 너무 전국구니까. 그리고 대부분의 희석식 소주에는 타피오카, 고구마 등이 원료로 사용되니 서울과 큰 관련도 없고. 그때 이 술을 알게 되었다. 한강주조의 나루생막걸리.

누군가 서울의 힙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 막걸리를 보여주고 싶다. 미니멀한 패키지 디자인 그리고 원통형의 투명한 병, 그 안에서 찰랑이는 탁주.

사실 나는 이 막걸리와 안 좋은 추억이 있다.

작년 12월 31일, 나는 변기통을 붙잡고 온 힘을 다해 게워내고 있었다. 거의 5년 만의 경험이었다. 맛만 보려고 했던 나루생막걸리 때문이었다. 막걸리 혼술이 그렇게 위험한지 몰랐다. 굳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까닭은 그 정도로 대단한 술임을 말하고 싶어서다. 요즘 혼술이 재미없어서 마셔도 겨우 두 모금이었는데, 만취할 정도로 마시다니. 나를 그렇게 만들다니..!


아무튼 안주도 없이 마신 막걸리는 쭉쭉 들어갔다. 나루생막걸리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게 특별하지 않다. 농담이 아니다. 둔한 미각을 가진 주제에 우기는 것도 아니다. 나는 나루생막걸리를 사기 위해 성수동에 있는 한강주조 양조장에 직접 다녀왔고, 대표를 만나 짧게 인터뷰도 했다. 그럼에도 ‘특별한 것 없음’이 내 결론이다.

말장난처럼 들리겠지만, 특별하지 않은 것이 이 막걸리의 매력이다. 탄산이 과하지도 않고, 단맛이 강하지도 않았다. 우도땅콩 맛이나 바나나 맛을 첨가하지도 않았다. 마치 무신사 스탠다드처럼 넘치거나 부족함이 없는 스탠다드한 맛을 보여준다. 그리고 중요한 것 한 가지 더, 무항생제, 무감미료다.

많은 막걸리에는 단맛을 내기 위해 아스파탐 같은 감미료를 넣는다. 어떤 사람들은 아스파탐 맛이 싫다고 하지만, 난 모르겠다. 막걸리에 감미료를 넣은 것이 죄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내 혀는 예민하지 않아서 설탕과 아스파탐도 구분하지 못하니까.

나루생막걸리에는 감미료가 들어가지 않았지만 단맛이 난다. 그 비결은 쌀함유량이다. 다른 막걸리의 쌀함유량이 보통 10% 정도인 것에 비해 나루생막걸리의 쌀함유량은 약 20%다. 오직 쌀로 단맛을 낸 것이다.


“쌀 자체에 당분이 있거든요. 쌀을 오래 씹어먹으면 단맛이 나잖아요.” 


양조장에서 들은 설명이다. 내가 특별하지 않아서 특별하다고 말한 이유가 이것이다. 이 녀석은 우직하다.

감미료를 넣지 않아서일까. 속이 부담스럽지 않았고, 목넘김이 부드러웠다. 입안이 텁텁하지도 않았다. 그러니까 혼자 한 병을 다 비울 수 있었겠지. 만취한 그 날에 나는 ‘막걸리는 원래 이런 맛이겠구나’ 싶었다.

내가 이 막걸리를 두고 서울의 술이라고 한 이유는 바로 경복궁쌀을 썼기 때문이다. 경복궁쌀은 서울 강서구 끝자락에 있는 개화동, 과해동 일대에서 재배하는 품종인데, 경복궁쌀로 막걸리로 만드는 양조장은 한강주조의 나루생막걸리가 유일하다. 경복궁쌀은 한강물을 끌어다 경작한다고 하니, 이건 정말 ‘찐’서울산이다.


양조장에서 경복궁쌀을 선택한 이유도 ‘서울의 술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하더라. 하지만 경복궁쌀을 쓴다는 점이 어떤 맛의 차이를 가져다주는지는 모르겠다. 다른 쌀로 담근 막걸리와 비교해서 단 번에 알아맞출 자신도 없다. 물론 그런 경지에 오른 사람도 있긴 하겠지. 참고로 경복궁쌀은 제초제 대신 왕우렁이를 방생하여 생산한다고 한다. 열일한 우렁이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한다.

이번 글에서 소개한 막걸리는 한 종류 뿐이지만, 한강주조에서는 두 종류의 막걸리는 팔고 있다. 사진 속 막걸리는 500ml의 11.5도짜리 막걸리다. 다른 막걸리는 935ml로 용량이 두 배에 가깝고 도수는 6도다. 두 제품은 도수와 용량 말고는 큰 차이가 없으니 취향 껏 고르면 된다. 가격은 6,000원, 1만 1,000원으로 막걸리치고는 비싸다고 느낄 수 있지만, 항상 마시던 것만 마시면 지루하지 않은가. 구매를 원한다면 한강주조 인스타그램(@hangang_brewery)에 문의를 하면 된다. 광고도 아닌데 구매 방법을 친절히 알려주는 이유는 찾기 힘들 것 같아서다. 다른 이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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