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보틀이 파는 7만원짜리 에코백의 정체는?

조회수 2020. 6. 17. 12:5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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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여러분. 리뷰요정 에디터H다. 이 낯간지러운 호칭도 오랜만인 것 같다. 오늘은 나의 도시락 가방을 리뷰해보려고 한다. 도시락 가방이라고 하면 보온이 되거나 방수가 되는 물건을 떠올리시겠지. 어릴 적 등하교길에 들고 다니던 원통형 가방 같은 것 말이다. 이 대목에서 정서적 교감이 순식간에 이루어졌다면 부정할 수 없는 도시락 세대.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도시락에서 급식으로 넘어가는 과도기 세대다. 내가 사립학교의 부정부패가 느껴지는 질 낮은 급식을 먹기 시작한 그때부터, 어머니는 이제 당신 인생에 도시락 따위는 없을 거라 속단하셨겠지. 그로부터 15년이 넘게 흘러 30대가 된 딸이 “어머니 저는 바깥 음식이 소화가 잘 되지 않아, 저탄고지 스타일로 홈메이드 런치를 먹고 싶사옵니다”라고 말하는 미래를 상상하진 못하셨을 거다. 그렇고말고. 결국 어머니는 네이버에 케토제닉을 검색했고, 콜리플라워로 볶음밥을 만드는 경지에 이르렀다. 매일 매일 종이 쇼핑백에 사랑의 도시락을 담아 출근하던 철없는 딸은 생각했다. 아, 나의 소셜 포지션에 알맞은 도시락 가방이 필요하겠구나! 이것이 이 리뷰가 탄생하게 된 인과관계다.

나의 운명 같은 도시락 가방을 만나게 된 곳은 블루보틀 매장. 커피도 비싸고 디저트도 비싸고, 굿즈도 비싼 블루보틀 매장에 한 켠에서 가방을 팔고 있었다. 흘긋 보니 각 잡힌 에코백 같은 모양새가 딱 내 취향이 아닌가. 슬그머니 가격을 확인하고 뒷걸음질을 쳤다. 작은 런치백이 7만 원, 세로로 긴 형태의 마켓백은 11만 원. 커피집에서 11만 원짜리 에코백을 팔다니. 블루보틀 놈들이 미쳤구나, 하고 생각하는 순간 가방 뒷면의 아폴리스 로고가 보였다. 조용히 런치백을 구입해서 매장을 빠져나왔다.

아폴리스는 2004년에 두 형제가 함께 만든 LA 베이스의 브랜드로 사업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흔히 말하는 ‘지속 가능한 성장’에 힘쓰고 있는 회사 중 하나인데 제품이 생산되고 있는 방글라데시 사이드푸르 지역의 경제 발전에 기여하고 있음이 인상적이었다.

[대충 이런 느낌이었다]

물론 내가 아폴리스 제품에 관심을 가진 건 이런 브랜드 철학 때문은 아니었다. 6년 전이었나, 파리 근교의 바닷가 마을로 여행 갈 계획을 세우고 있었는데 한 장의 사진을 보게 됐다. 어느 여행자가 모래사장에 에스닉한 패턴의 돗자리를 펼쳐놓고 수영복을 입고 앉아있는 모습이었다. 그 옆에는 그 바닷가와 기가 막히게 어울리는 가방이 툭- 놓여있었다. 내추럴한 무드에 반듯하게 각 잡힌 모양. 흔한 에코백이나 피크닉 같아 보이지만 손잡이나 디테일이 범상치 않았다. 만 원 주고 산 기념품 따위는 아닌 거다. 게다가 빵 봉투처럼 무심한 듯 시크한 디자인도 훌륭했다. 바게트라도 하나 꽂아두면 내 허세에 정점을 찍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거야말로 프렌치 시크 그 자체였다(알고 보니 미국 브랜드였다는 게 함정이지만).

[내가 찾아 헤맨 바로 그 가방]

사진의 해상도가 너무 낮은 데다 확대해도 확대해도 로고가 보이지 않았다. 이 가방이 어느 브랜드인지 알아내기 위해 얼마나 긴 시간을 허비했는지 모른다. 결국 알아냈지만 국내 정식 판매처가 없어서 직구 비용이 상당히 부담스러워 포기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이제 이렇게 쉽게 구매할 수 있다니! 그것도 커피 마실 들어갔다가 우연히!

[이건 커스터마이즈 제품]

아폴리스의 시그니처 백은 위아래로 길쭉한 형태의 마켓 백이다. 기본형은 58달러. 디자인에 따라 원하는 문구를 써넣을 수 있는 커스터마이즈 제품도 있다. 100% 황마 소재의 질감을 자연스럽게 살려서, 그 느낌 자체가 훌륭하며 가볍고 튼튼하다. 방글라데시의 특산품인 주트라는 식물성 섬유로 제작된다더라.

아폴리스의 모토 중 하나가 오랫동안 사용하는 가방이라는 것. 소재가 거칠어 보이지만 내부는 매끈하게 방수 처리 되어 있어서 오염에 강하고, 약 60kg 정도의 무게를 견딜 수 있을 만큼 튼튼하다고.

가방 안에 들어있던 팜플렛엔 8년 동안 매일 들면서 낡아가는 모습이 인쇄되어 있었다. 프린트된 글씨가 흐릿해지고, 표면이 마모되고 손잡이의 가죽이 태닝 되어가는 과정이 멋스럽다. 과연 내가 같은 가방을 8년 동안 들 수 있을 만큼 질긴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내가 구입한 런치백은 블루보틀과 협업해 만든 굿즈인 만큼, 한쪽에 오클랜드라는 반듯한 글씨가 새겨져 있다. 오클랜드는 블루보틀의 고향이다. 서로의 브랜드가 잘 드러나는 좋은 만남이 아닐까.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나는 이런 가방이 참 좋다. 반듯하게 각 잡힌 직사각형의 가방에 짧고 견고한 손잡이와 깨끗하게 인쇄된 로고를 보면 그냥 갖고 싶어진다. 이게 무슨 특별한 디자인도 아닌데 한 끗 차이로 조금 더 근사한 것들은 눈에 확 들어온다. 아폴리스가 그랬다. 게다가 이 브랜드의 이야기와 철학을 들여다보면 더더욱 마음이 흡족하다.

시그니처인 마켓백을 사지 않은 게 좀 아쉽긴 하지만, 내게 필요한 건 도시락 가방이었으니까. 출근할 때마다 가방을 챙기고, 마스크를 쓰고,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고, 마지막으로 도시락이 담긴 이 가방의 매끈한 가죽 핸들을 손에 쥔다. 진짜 내게 필요한 게 뭔지를 판단하기 어려운 요즘이다. 우연히 만난 도시락 가방 리뷰는 여기까지. 여러분도 아폴리스 브랜드에 관심이 생기셨다면 웹사이트에 구경가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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