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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레트가 작정하고 만든 프리미엄 면도기

조회수 2020. 6. 26. 10: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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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서른세 살의 직장인 에디터B다. 남자의 아침은 심플하다. 샤워를 하고, 로션을 바르고, 옷을 입고, 머리를 말린 뒤 집밖으로 나선다. 미디어에서는 몇 년 전부터 꾸미는 남자 ‘그루밍족’의 출현에 주목했지만 출근을 앞둔 직장인에게 그루밍이란 단어는 사치스럽다. 그 시간에 5분이라도 더 자는 게 삶의 질을 높이는 방법이니까. 하지만 아무리 시간을 줄이려 해도 절대 줄지 않는 시간이 있다. 면도하는 시간이다.


아침 면도는 종교적 수행과 비슷하다. 폭풍과 같은 출근 시간에도 날이 선 면도칼을 턱에 과감히 갖다 대야 하고, 피를 보지 않으려면 조급한 마음은 눌러야 하며, 면도를 하기 전까지 수염을 불리고 날을 데우기 위해 하염없이 기다려야 한다. 과감함과 침착함을 연마하는 이 시간은 도통 줄여지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열이 나는 면도기가 출시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질레트에서 만든 히티드 레이저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바버샵의 스팀타올이 주는 온기를 느낄 수 있다는 말에 마음이 동요했다. 광고 문구에서 그치지 않고 실제로도 그렇다면 남자들의 아침은 달라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대에 부푼 채 사용해봤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Q&A 형식으로 리뷰를 썼다.


그런데 왜 면도기에서 열이 나는 거죠?
그게 왜 중요해요?

면도기는 털을 자르는 도구다. 털을 자르기 위해서는 날을 아주 예리하게 만들어서 절삭력을 향상시키면 우주 최강의 면도기가 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면도기가 자를 털이 수염이기 때문이다. 수염은 피부가 약한 얼굴 부위에 있고, 면도하는 과정은 어쩔 수 없이 피부 손상을 일으키니 절삭력만 좋은 건 절반만 좋은 면도기인 셈이다. 최고의 면도기란 절삭력도 우수하고 피부 자극도 최대한 막는 면도기다. 질레트의 프리미엄 라인, 질레트 랩스가 온열 바(bar)가 들어간 히티드 레이저를 만든 이유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고 싶었기 때문이다.

면도날 아래 황동빛 스테인리스 바가 보이나? 그게 바로 온열 바다. 히티드 레이저는 바에서 열이 나게 해 피부 자극을 최소화한다. 온열 바가 날보다 아래에 있기 때문에 실제 면도를 하게 되면 피부가 열을 먼저 감지한 후 바로 이어서 면도날의 마찰을 느끼게 된다. 차가운 면도날보다 열감을 먼저 느끼기 때문에 수염이 뜯겨나갈 때 느끼는 자극이 줄어든다. 이건 과학적인 원리이고, 더 중요한 건 실제 경험이 아니겠나.


내가 실제로 히티드 레이저를 사용해보니 면도를 할 때도, 면도를 마치고 나서도 수염이 있던 부위가 따끈따끈했다. 수염이 잘려 나간 후 따끔거림이 확실히 적었다. 뿐만 아니라 면도를 할 때 온열 바가 피부에 닿는 느낌도 만족스러웠다. 처음엔 그 느낌이 낯설었지만 금세 중독되었다.


질레트가 아니라 질레트 랩스라고요?

위에서 말했듯 ‘질레트 랩스’는 질레트에서 만든 프리미엄 라인이다. 나도 처음 보는 이름이었는데 알고 보니 이번에 출시한 히티드 레이저가 바로 질레트 랩스의 첫 제품이었다. 어떤 브랜드는 비즈니스맨보다는 장인에 가깝다. 그런 브랜드를 보면 맹목적으로 신뢰를 보내고 싶어진다. 내겐 질레트가 그런 브랜드다. 남자에게 면도는 취향이 아니라 필수의 영역인데, 경험상 질레트만 한 면도기는 없었기 때문이다. 좋든 싫든 면도를 아침마다 해야 하는 성인 남자에게 면도기란 생존템일 수밖에 없는데 전기면도가 아니라 습식면도에 정착한다면 종착지는 결국 질레트가 되곤 하니까.

최초의 3중날, 최초의 헤드 회전형 면도기 등 100년 넘게 면도기를 연구해 온 브랜드라는 기네스북스러운 설명을 논외로 하더라도 질레트를 써본 사람이라면 품질 하나만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프리미엄 브랜드인 질레트 랩스는 한차원 높은 그루밍 경험을 주기 위해 만들어졌다니 앞으로 나올 제품들이 벌써 궁금해지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신기하다. 세계 점유율 1위의 면도기 브랜드가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을 면도기에 도입하려 한다는 것이 말이다. 온열 면도기를 만들 생각을 하다니, 신기한 곳이다.


정말 바버샵에서 면도하는 기분이에요?

‘남자를 위한’, ‘여자를 위한’이라는 수식어가 올드해진 2020년에 살고 있다. 그래서 바버샵은 더 특별한 공간처럼 느껴진다. 여전히 바버샵은 남자들만 가는 곳, 그중에서도 가꿀 줄 아는 멋쟁이 신사만 가는 공간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미용실과 다른 바버샵만의 특징이라면 면도를 해준다는 것이 아닐까. ‘왜 굳이 바버샵까지 가서 돈을 내고 면도를 할까?’라는 의문이 든다면 잠깐 내 말을 들어보면 좋겠다.

바버샵에서는 이렇게 면도를 해준다. 수염에 면도크림을 바른 후 스팀타올로 얼굴을 덮어 수염과 피부에 수분을 공급한다. 얼굴이 따땃해서 이대로 잠들면 좋겠다고 생각이 들 때쯤 타올을 걷고 다시 면도크림을 발라 면도를 시작한다. 바버샵에서 면도를 하는 남자들은 스팀을 가득 머금은 따뜻한 스팀타올을 올리는 것에서부터 수염을 사각사각 깎는 과정에서 안락함을 느끼는데, 히티드 레이저를 통해 그런 기분을 체험해 볼 수는 있겠다. 직장인의 99.9%는 아침 일찍 바버샵에 갈 수 없고, 99.8%는 아침부터 면도를 하기 위해 스팀타올을 올리지 않기 때문이다. 스팀타올이 주는 열감과 히티드 레이저의 열기를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을 수 있지만, 온열 바가 주는 열감이 상당히 괜찮다. 면도 자극을 완화해주는 느낌은 물론이고, 온열 바와 닿는 촉감이 중독성있다.


사용법은 어렵지 않나요?

사용법은 간단하다. 충전이 된 상태에서 면도기 손잡이 부분에 있는 전원 버튼을 누르면 불빛이 네 번 깜빡인 뒤 켜진 상태를 유지한다. 사용 가능한 상태라는 뜻이다.

온열 바가 데워지는 데까지 오래 걸리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딜레이는 거의 없이 온열바가 1초만에 따뜻하게 데워진다. 켜진 상태에서 전원 버튼을 2초 정도 꾹 누르면 온도가 바뀐다.

온도는 43도와 50도 두 가지 옵션이 있으니 취향껏 골라 사용하면 된다. 붉은색이 50도로 뜨끈한 느낌, 주황색은 43도로 은은한 따뜻함을 준다. 나는 피부가 두껍지 않은 편이라 43도가 더 좋았다. 질레트는 인간이 감각기관에서 느끼는 가장 편안한 온도를 연구해서 이렇게 두 가지 온도를 면도기에 적용했다고 하더라. 면도가 끝나면 물에 씻어 다시 거치대에 올려두기만 하면 된다. 당연히 방수다.


정말 방수예요?
그럼 샤워 중에 써도 정말 괜찮아요?

‘샤워할 때 써도 정말 괜찮을까?’ 내가 처음 히티드 레이저를 보고 들었던 궁금증이기도하다. 완전 방수가 된다고는 하지만 염려가 된 이유는 전자제품이기 때문이다. 어찌되었든 히티드 레이저에는 배터리가 들어있으니까. 제품을 처음 쓴 날, 샤워기로 물을 틀어놓고 걱정되는 마음으로 면도를 시작했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일주일 넘게 히티드 레이저로 면도를 하고 있는데 문제가 전혀 없다. 전자제품이라는 생각 때문에 불안해했던 것만 빼면 다 괜찮다. 그러니까 히티드 레이저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고, 내 마음이 잘못했다. 내 멘탈이 잘못했다. 그냥 다른 면도기처럼 쓰면 된다. 하지만 가격대가 있으니 관리는 더 잘하도록 하자. 충전 거치대, 면도날 2개가 함께 포함된 스타터 키트의 가격은 24만 9,000원이다.


충전식인데 불편하지 않나요?

스마트폰에 스마트워치, 태블릿 그리고 노트북까지… 집 안에 전기를 먹는 애들이 많다. 그래서 면도기가 충전식이라는 말을 듣고 약간의 피로감을 느낄 수는 있다. 하지만 실제로 사용해보니 충전 때문에 번거로웠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히티드 레이저는 유선이 아니라 무선 충전 방식이고, 배터리 타임도 꽤 길기 때문이다. 충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일은 없었다.


충전 방법도 간단하다. 면도기와 함께 동봉된 마그네틱 무선 충전 독에 면도기를 세우면 ‘톡’하고 바로 달라붙는다. 중요 기능은 충전기이지만 거치대의 기능까지 가능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면도기를 거의 눕혀서 방치시키는 인간인데, 거치대가 있으니 착실하게 그 자리에 놓게 되더라. 올바른 습관 형성에 도움이 된다. 면도기가 거치대에서 충전되는 모습도 멋스럽다. 충전 중일 때는 버튼이 깜빡깜빡하고 빛나는데 꽤 고급스러운 인테리어 오브제처럼 보인다.

충전거치대의 무게는 732g으로 묵직한 편이다. 그 덕분에 실수로 툭 친다고 떨어지거나 하지 않는다. 히티드 레이저를 완전 충전하는 데는 6시간 정도 걸리고 사용 횟수는 평균 6회 정도다. 최대 사용 횟수는 사용 시간에 따라 개인차가 있음을 감안하자. 나는 면도를 빨리하는 편이라 이미 6회를 넘겼다.


삶의 질이 달라지나요?

삶의 질이라… 그건 너무 거창한 단어 선택 같고, 아침이 달라진다고는 말할 수 있다. 제품 하나만 바꿨는데 면도 스킬이 향상된 셈이니까. 이것저것 물건 사는 걸 좋아하지만 사실 나는 그루밍족과는 거리가 있는 인생을 살아왔다. 그래서 면도는 항상 골치 아픈 숙제 같은 느낌이었다. 시지프스가 끝도 없이 돌덩이를 굴리듯 매일 면도를 하는 게 벌칙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무뎌진 면도날에 피부가 손상되기도 하고, 피부 트러블이 생기고, 거울 보면 속상하고. 오래 전 유럽에서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면도하는 법을 반드시 알려줬다고 하는데 왜 그런지 알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히티드 레이저를 쓰니 어설픈 면도 습관이 보완되는 것 같았다. 위에서 계속 언급했던 온열 바뿐만 아니라 다른 스펙도 상급이기 때문이다.

면도기의 헤드가 상하좌우 얼굴 곡선에 맞게 움직이는데, 덕분에 온열 바가 쉽게 피부에 밀착된다. 이걸 플렉스디스크 기술이라고 하더라. 또 히티드 레이저에는 면도날이 다섯 개나 달려 있어서 깔끔한 면도를 위해 같은 자리에서 몇 번이나 면도질을 할 필요가 없다. 덕분에 피부 손상이 적다. 전기 면도기와 달리 습식 면도를 할 때는 날이 피부에 밀착되기 때문에 피부 손상을 가져오는데, 횟수를 줄이면 피부 손상이 줄어드는 건 당연한 이치다. 그리고 히티드 레이저에 쓴 면도날은 질레트에서 만든 날 중 가장 얇은 면도날이라고 한다. 장점을 나열하다보니 100년 넘게 질레트가 연구해온 면도 기술력을 총동원했다는 느낌이다.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나 덧붙이자면, 타임지에서는 히티드 레이저를 2019 혁신적인 발명품 100개 중에 하나로 뽑았다고 한다. 몇 천 년 전부터 내려온 면도의 역사를 보면 온열 면도기는 면도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제품이 맞는 것 같다.


마지막 질문!
그러니까 ‘돈값’한다는 거죠?

다시 한번 말하지만 히티드 레이저의 가격은 24만 9,000원이다. 알다시피 습식 면도기 중에 이 정도 가격대의 제품은 없었다. 부담스러울 수 있는 가격이다. 하지만 나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기분이다. 집 안에 널브러진 다른 면도기를 생각하면 옛정보다는 옛날 거라는 생각만 든다. 무선 이어폰을 쓰면 유선 이어폰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듯이, 나는 돌아갈 자신이 없다. 그리고 나 혼자 새 시대에 살 수 없으니, 이 면도기를 아버지에게도, 형에게도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손에 손잡고 럭셔리한 면도의 세계로 가자고 말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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