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빵점짜리 남편이었어요.

조회수 2020. 1. 31. 12:5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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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뉴그레이가 만난 열일곱 번째 아빠의 이야기와 사진을 담았습니다.
배상관 (63, 전 소방공무원)

뜻대로 다 하고 살았다고 했다. 부모의 속을 많이 썩였는데, 군 제대를 하고 곧장 소방관이 됐다. 35년 동안 자신보다, 가족보다, 공익을 위해 살았다. 이제는 집사람에게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싶다고 했다.

“빵점이야 빵점.”

 

공무원이라는 게…. 자네도 알다시피 박봉이야. 마누라 고생 많이 시켰어. 남편의 도리를 다 못한 거야. 해외여행도 한 번을 못 보내줬거든. 35년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내 뒷바라지만 했어.

 

“무서운 아빠였어.”

 

애들 통금도 있었고, 애들이 원하는 것보다 미래에 안정적인 길을 택할 수 있게 키웠어. 아들이 PD를 하고 싶어 했는데, 아들 의지와는 관계없이 교사를 권유했어. 처음에는 반발했는데, 요즘은 만족하는 것 같아.

“바다에 가면 안줏거리가 많잖아”
 
바다 가까운 곳에서 살고 싶다고 했다. 집사람과 술을 자주 한다고 했다. 무서운 아버지였다는 말과는 달리, 그의 아들과 딸은 아빠에게 장난을 곧잘 건네고, 아빠는 그걸 잘 받아주었다. 그는 그냥 츤데레 아빠였다.

#아빠에게 

 

아빠, 제가 약간 표현을 잘하지 못하는 성격이라 고마운 것도 표현을 못 했어. 지금까지 남들에게는 아빠가 소방관이고 멋있다 자랑을 많이 했는데, 아빠한테는 직접 못했던 것 같아. 항상 존경한다는 말 하고 싶었어. 존경하고 사랑해. 

 

#남자는죽을때까지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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