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30년 전에 미용사가 되었습니다.
첫인상. 그는 감히 서른셋의 아버지 가운데 가장 인상 깊었다. 박완규와 같은 장발의 록커가 떠오르는 장발과 30년 전에 미용을 시작했다는 것 때문이었다. 30년 전, 미용하는 남자가 드물어 잡지에서나 구경하던 시절. 그의 인생이 분명 쉽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 정말 그래.”
스물셋이었나. ‘선데이서울'이란 잡지에서 남성 미용 연구가를 처음 봤어. 하겠다고 했지. 아버지 난리 났고. 하지만 의지를 꺾진 못했어. 나도 그래. 딸을 이겨본 기억이 없어. 그냥 친구로 지내 우리는.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하는데, 갈잎 먹다가 오바이트했지 뭐 허허.”
미용제품 특허를 냈었어. 세계 최초였어. 미국까지 진출했어. 근데 망했어. 사람 때문에. 큰 실패였고, 다시 미용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었어. 가족 때문에 극복했고, 다른 뜻에서 그래서 가족에게 미안해. 못 해줬으니까.
멋진 남자였다. 동시에 강한 가장이었다. 쓰러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가장’이란 무게는 그 어떤 풍파도 견뎌낼 수 있다는 것을 그를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아빠에게
안녕 아빠! 오랜만에 아빠한테 편지를 쓰네. 그래도 내 성격상 길게는 못쓰겠어… 그동안 우리 때문에 고생 많으셨어요. 아빠 잘못이 아니지만 그로 인해 생긴 죄책감 아닌 죄책감 때문에 반평생을 우리를 위해 살아오신 우리 아빠 이제는 우리 말고 아빠를 위해 투자를 하셨으면 좋겠어요. 취미생활도 하고 아빠 하고 싶은 거 다해! 사랑해요. 아빠.
#남자는죽을때까지남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