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잘 안되니까, 세 번 잘 안되더라고요.

조회수 2020. 7. 30. 17:4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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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뉴그레이가 만난 65번 째 아빠의 이야기와 사진을 담았습니다.
황성철(50, 노점 운영)

“한번 잘 안되니까, 세 번 잘 안되더라고요. 허허.."

어떻게든 살아야 했다. 그는 동대문에서 노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회사생활도 했고, 사업도 했지만, 결국에는 잘 안됐다. 그렇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막노동부터 가리지 않고 했다. 

- 동대문에 계신다고요?

+ 네, 거기서 노점을 하고 있어요. 비가 오지 않으면 어떻게든 매일 나가면서 일을 해요. 젊어서는 스물일곱부터인가? 5년 정도 회사생활을 하다가 내 일을 시작했죠. 내 일하다가 잘 안됐어요. 한번 안되니까, 세 번 안되더라고요. 막노동도 하고, 건축 일도 하고, 별걸 다 했어요.

+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이제 밖에 나와서 내 일을 하게 됐거든요. 처음으로 했던 일이, 벤처 붐일 때 정보통신 쪽 관련 일을 시작했어요. 인터넷과 이동통신 관련된 일. 먹고 살 정도는 됐었는데, 시간이 흐르다 보니 자본이 중요하더라고요. 버틸 수 있는 자금이 있어야 했는데, 결국은 말아먹었죠.

+ 젊었으니까 맨 주먹으로 다시 시작했어요. 그렇지만 결국은 말아먹었죠. 쇼핑 관련한 도매업이었는데, 그것도 결국 버티지 못했어요. 그러다 싼 것보다는 비싼 걸 팔아보자, 해서 부동산을 시작했어요. 영업을 했는데, 잘 해서 땅을 직접 사서 판매를 했어요. 잘 되더니 싶다가 망했어요.


- 엄청 크게 했었겠어요.

+ 컸죠.. 큰 만큼 부러지고 회복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죠. 5년 정도.. 그러고 나니 40대가 되어버렸죠. 지금은 신길동 고시원에 지내고 있어요. 중간에 울산도 내려갔다, 7년 만이죠, 작년에 올라왔어요.

+ 계획이나 인연이 있어서 울산에 갔던 것도 아니고, 서울에 다시 올라왔던 작년에도 크게 무슨 수가 있어서 올라온 건 아니에요.


- 가정을 꾸리지는 않으셨어요?

+ 꾸렸었죠. 첫 사업이 부러지니까, 친구들이 떠났죠. 두 번째 사업이 부러졌을 때 부모와 형제들이 떠났고요. 세 번째 사업이 망하고, 내 가족이 떠났죠. 많이 참았을 텐데, 고생도 많이 했는데, 재기할 상황이 못됐어요. 가정을 유지하는 게 오히려 해가 됐을 정도였으니까요. 가장의 역할을 하지 못했으니까.

+ 딸과 가끔 연락을 하고 지내요. 이제 스물한 살 됐는데, 대학교 2학년이겠네요. 해준 게 없어서 너무 미안해요.


하루는 어떻게든 먹고살지만, 뭐라도 하려면 모아야 한다고 했다. 어떻게든 모아서 유통 관련 일을 시작하고 싶다고 했다. 한계가 분명히 있겠지만, 포기할 생각은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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