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 된 카이스트생, 그 엉뚱한 도전의 결과물

조회수 2021. 4. 6. 0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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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 졸업 후 교수·미디어 아티스트 활동

인공지능 기반 AR 커머스 플랫폼 개발

3D 모델링 자동화해 비용·시간 크게 낮춰

출처: 더비비드
반성훈 리콘랩스 대표.


오매불망 기다리던 택배가 도착해 뜯어봤더니 기대와 달라 실망한 경험, 누구나 있을 것이다. 가구처럼 부피가 큰 물건은 반품 배송비가 많이 드는데다 반품 전까지 보관이 번거로워 애물단지가 된다. 이런 일을 막기 위해 매장에서 구경한 다음 온라인에서 결제하는 소비자도 많지만, 이 경우 적잖은 시간을 쏟아야 한다.


물건을 구입하기 전 제품의 정확한 사이즈를 알 수 없을까. 쇼핑몰에서 눈 여겨 본 침실 협탁을 내 방에 두면 어떤 느낌일지 알고 구매할 수는 없을까. AR 커머스 플랫폼 ‘아씨오’(ASEEO)는 이런 온라인 쇼핑몰 애호가들의 고민을 끝내기 위해 탄생했다. 아씨오의 개발사 리콘랩스의 반성훈 대표를 만나 첨단 기술을 실생활에 적용하는 법에 관해 들었다.


◇인간과 컴퓨터의 관계에 관심 많던 공학도

출처: 리콘랩스
3D 모델링한 그림 작품과 러그를 아씨오를 통해 현실에 적용한 모습.


리콘랩스는 증강현실(AR), 가상현실(VR) 기술과 관련한 인공지능(AI)을 연구하는 회사다. 현실 속 대상을 AR로 구현하는 AR 커머스 플랫폼 아씨오가 주력 서비스다. 예를 들어 의자를 구매하기 전 스마트폰 속에 구현된 공간에 의자를 가상으로 배치해 다른 가구와 잘 어울리는지 가늠해볼 수 있다.


경쟁사와 비교했을 때 시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였다. 가구나 생활 소품 같은 사물을 사람이 3D 모델로 제작하는 경우 적게는 3일에서 많게는 21일이 걸린다. 비용은 건당 5만~60만원이다. 반면 아씨오에서는 1~3시간이면 모든 작업이 끝난다. 가격은 건당 3만~5만원에 불과하다.

출처: 리콘랩스
미디어 아티스트로 활동했던 시절의 반 대표.


반 대표는 어릴 적부터 '영재' 소리를 듣던 엘리트다. 한국과학영재학교,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석·박사를 졸업했다. 학부에서 신소재 공학을 전공했지만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한 전공은 문화기술이다. 


새로운 전달매체를 뜻하는 ‘뉴미디어’를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뉴미디어는 시대에 따라 변해왔어요. 과거엔 커다란 데스크톱만 컴퓨터 역할을 했지만 지금은 휴대폰, 태블릿PC가 대신 하고 있잖아요. 미래에는 스마트 안경 같은 웨어러블 기기, AR·VR을 통해 디지털 정보를 접하게 될 거예요. 뉴미디어가 출현했을 때 사람들은 늘 어려워했어요. 저는 미래의 뉴미디어를 사람들이 어려움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연구했죠."


2018년 박사 학위 취득 후 미디어 아티스트로 전시활동을 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와 한양대학교 강단에도 섰다. 영상학과와 미디어학과 학생을 가르쳤다. VR, AR 이론 이해부터 실습까지 전 과정을 강의했다. “사회에 나와보니 제가 공부한 기술이 대중과는 동떨어져 있더군요. 미디어 기술은 이미 고도화됐는데 VR·AR을 접해본 사람들의 인식은 ‘신기하다’는 데 그쳐 있었어요. 기술을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했습니다.”


◇첫 아이템 VR 콘텐츠 개발이 좌절된 뜻밖의 이유

출처: 리콘랩스
반 대표와 리콘랩스의 구성원들.
출처: 더비비드
첫 사업 아이템이었던 위치 기반 VR 기술을 연구했던 흔적.


2019년 11월 카이스트 석·박사 동료들과 서울대 박사 출신의 지인과 의기투합해 AR·VR 서비스 플랫폼 회사를 설립했다. 가상 세계에서 현실을 재구성(reconstruct)한다는 뜻으로 리콘랩스(RECONLabs)라는 이름을 붙였다. “AR·VR의 효용을 일상 속에서 체감할 수 있는 서비스를 개발하고, 뉴미디어를 원활히 구동 시킬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회사로 출발했습니다.”


첫 사업 아이템은 위치 기반(location based) VR 기술이었다. “같은 공간에서 여러명이 동시에 VR을 체험하는 기술을 연구했습니다. 기기를 착용하고 움직여도 부딪히지 않으려면 각자 서로의 위치와 주변 공간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해요. 이를 구현하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어요. 20명에 가까운 인원이 같은 공간에서 VR을 체험하는 공간을 목표로 콘텐츠를 제작했고 실험까지 마쳤죠. 콘텐츠진흥원에서 지원도 받았고요."


탄탄대로를 걷던 중에 코로나19 사태가 터졌다.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무언가를 하는 사업을 진행하기 어려워졌다. 


◇인공지능 3D 모델링 구상해 커머스에 접목

출처: 리콘랩스
리콘랩스 구성원들
출처: 리콘랩스
실제 가디건(가장 왼쪽)을 3D 모델링(가운데)한 후 웹 AR(가장 오른쪽)로 구현하는 과정


사업 전환이 필요했다. 문득 강연 중 경험했던 고충이 떠올랐다. “한예종에서 다양한 콘텐츠 제작 프로젝트를 했는데요. 가장 괴로운 과정이 바로 3D 모델링이었습니다. 적지 않은 돈을 주고 3D 모델링 전문 인력에 작업을 맡겨도 결과물이 처음부터 마음에 든 적이 거의 없었거든요. 한 번 맡기면 며칠 걸리는데, 수정사항까지 고려하면 최종 결과물을 받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소요됩니다. 제작자와 거듭 부딪히면 지치고요. 현장에서는 이런 갈등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사업성이 있을 것 같았죠.”


3D 모델링 기술을 접목할 분야로 ‘AR 커머스’를 선택했다. “미국 AR 전문 매체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커머스에 AR 솔루션을 도입한 업체들의 구매전환율, 매출 등 유의미한 지표가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최첨담 기술에 투자할 여력이 많지 않은 소상공인 대상 서비스가 필요하던 차였다. "국내에서는 롯데홈쇼핑, 하이마트 같은 큰 기업들이 AR 솔루션을 도입했죠. 하지만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에게는 그림의 떡이었습니다. 50개의 상품을 3D 모델로 제작해 이를 AR용 3D 모델로 변환하는데 1억원가량의 비용과 8개월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거든요.”

출처: 리콘랩스
리콘랩스 서비스 구동 과정
출처: 리콘랩스
투명 재질 형상을 3D 모델로 재구현하는 모습.


2020년 10월 인공지능 기반 AR 커머스 플랫폼으로 피봇(사업전환)을 결정하고 아씨오 개발에 들어갔다. 아씨오란 라틴어로 무엇인가를 소환한다는 뜻이다. “3D 모델링에 소요되는 시간과 결과물과 실제 대상 간의 간극을 줄이는게 관건이었습니다. 사진 속 대상을 3D 모델로 제작하는 기술을 ‘포토그래매트리’라고 하는데요. 관련 기술이 10년 전부터 개발되기 시작했지만 한계는 여전했어요."


사진은 현실을 평면으로 표현한 2D다. 조명 위치가 다르거나, 유리병처럼 각도에 따라 색상이 다른 반사형 재질의 사물은 3D 모델링 작업이 불가능하다. "이 점을 극복하기 위해 대상의 본래 색상과 밀도를 추론하도록 인공지능을 학습시켰습니다. 피사체의 색상이 어떤 굴절 과정을 거쳐 구현됐는지 인공지능이 배우는 것이죠. 사진 상에 드러나지 않은 사물의 모습도 예측할 수 있도록 구현했습니다.”


이용자가 접근하기 쉬운 서비스를 만드는데 주력했다. “3D 모델링 하고싶은 대상의 사진이나 영상을 저희 서버에 업로드하면 1~3시간 만에 자동으로 3D 모델이 만들어집니다. 사진 몇 백 장을 넣어도 3시간이면 3D 모델이 완성됩니다. 만들어진 3D 모델을 AR용으로 자동으로 변환해서 브라우저에서 볼 수 있도록 구현했습니다. 스마트스토어나 오픈 마켓의 사진, 영상 넣는 탭에 업로드하면 됩니다. AR 전용 앱조차 필요 없어 업체 입장에서는 앱 개발, 유지 비용을 아낄 수 있죠.”


◇11월 정식 출시...북미 시장 공략

출처: 리콘랩스
리콘랩스는 최근 디캠프가 롯데그룹과 공동 주최한 디데이에서 최종 5개사로 선정됐다. 사진은 지난 2월 디데이 발표 모습.


아직 서비스 공개도 안한 신생 스타트업이지만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의 인공지능 데이터 구축 사업 등 정부 출연 과제를 수행했어요. 블루포인트 파트너스에게 시드투자를 받았고, 롯데그룹의 스타트업 보육·투자 법인 롯데액셀러레이터의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에 선정돼 6개월 간 성장 지원을 받을 계획입니다. 최근에는 디캠프(은행권청년창업재단)가 롯데그룹과 공동 주최한 디데이(창업경진대회)에서 최종 5개사 중 한 곳으로 선정됐습니다.”


4월 초 베타 버전을 출시해 이용자 반응을 살핀 후 11월 정식 버전을 출시한다. "요즘 기업에서 러브콜을 많이 받고 있어요. 가구, 생활 가전, 홈데코, 반려동물 용품 브랜드 등 다양한 업체와 협력 방안을 논의 중입니다. 해외에도 진출할 계획입니다. 3D 모델링과 AR 변환 과정이 자동이라 언어 장벽 없이 저희 제품을 이용할 수 있잖아요. AR 커머스가 활성화된 북미 시장부터 공략할 계획입니다.”

출처: 더비비드
반 대표는 리콘랩스를 미래를 이끌어가는 회사로 키울 계획이다.


반 대표는 리콘랩스를 뉴미디어 시대를 이끌어가는 회사로 키우고 싶다고 강조했다. “이해 관계자들에게 저희가 하는 일의 당위성을 설득시키는 일이 가장 어렵습니다. 현재와 미래의 경계에서 ‘신기술 없이도 잘 살아왔잖아’라고 안주하는 이들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스마트폰이 현대인의 필수품으로 자리잡은 것처럼 기술은 계속 사람의 삶을 더 이롭게 할 겁니다. 


한 조사에 따르면 2024년까지 글로벌 AR 커머스 시장이 연평균 119% 성장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리콘랩스의 역할도 점점 커지겠죠. 이런 상상을 하면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누구나 신기술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힘 쓰겠습니다.”


/진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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