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네에서 로댕까지, 프랑스에 남겨둔 사적인 공간
자꾸만 떠나고싶어 예전 여행을 자꾸만 돌아보는 요즘이다. 지난 유럽 여행을 돌이켜보면 유명 예술 작품을 보기 위해 아침부터 저녁까지 꽉 찬 일정을 소화하곤 했다. 참 이상하다. 한국에선 덜 알려진 조용한 미술관, 박물관만 찾아다니는데 말이다. 넓은 미술관을 뒤져 작품 하나하나를 힘들게 찾아냈지만 예술가의 흔적을 느끼기엔 역시나 부족했다. 감상 좀 하려하면 불편한 표정으로 내 등짝까지 촬영하는 관광객들이 한가득 있었기 때문에 눈도장만 찍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참 아쉬웠다. 세세한 텍스쳐가 궁금해 먼 거리를 감수하고 찾아온 것인데 스치듯 안녕이라니.
파리 생 라자르 역에서 기차를 타고 약 45분 달리면 도착하는 작은 마을, 지베르니. 이곳에는 클로드 모네가 1883년부터 1926년까지 실제 거주했던 집이 있다. 인상파를 대표하는 클로드 모네는 빛에 따라 변하는 풍경을 평생에 걸쳐 연구하고 그린 화가이다. 모네는 43세에 지베르니에 자리를 잡고 이후 43년간 집과 정원을 가꾸고 작품 활동에 전념했다.
사실 파리에 위치한 로댕 미술관이 관광객들에게 더 많이 알려져 있다. 로댕은 1908년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파리 로댕 미술관에 위치한 비롱저택을 애용했다. 파리로 이동하기 전에는 프랑스 뫼동에 위치한 라 빌라 데 브리앙에서 주로 생활하며 작품 활동을 했다. 젊은 시절의 로댕이 머무른 이곳은 로댕의 일상을 보다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장소이다.
식당, 응접실, 조각 스튜디오가 있는 이 빌라는 1997년 사진으로 남겨진 내용을 바탕으로 재건축하여 예전 분위기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특히 이곳에는 석고 갤러리가 있는데 로댕의 작업실을 그대로 재현한다. 사실 코로나19 이전에는 이곳을 방문하는 누구나 로댕의 작업 방식을 더욱 상세하게 배울 수 있었다. 그의 작업방식을 담은 단편 애니메이션과 로댕의 청동 주조, 대리석 조각품을 가까이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상파 화가 르누아르의 별장은 2017년 6월 3일에 처음 대중에게 공개됐다. 르누아르의 삶과 작품을 기념하는 박물관으로 개장한 것이다. 에소이 마을은 약 700명의 주민이 거주하는 작은 마을이다. 이 마을은 그의 아내 Aline Charigot의 고향이었고, 아내의 권유로 르누아르는 이 별장을 샀다고 전해진다. 처음엔 바쁜 파리와 달라 어색함을 느꼈던 르누아르는 곧 아름다운 에소이 마을에 빠져들었다.
르누아르와 그의 아내 Aline Charigot이 1896년부터 1919년 사망할 때까지 매해 여름을 이 마을의 별장에서 보냈다. 또한 그의 후손들은 2012년까지 이 집에 거주했다. 2012년, 증손녀인 소피 르누아르(Sophie Renoir)는 이곳을 에소이 마을 의회에 매각했다. 대규모 작업을 거쳐 르누아르가 거주했을 그 시절의 모습대로 복원하고 자동 온도 조절 시스템을 추가했다. 내부에 들어서면 전시 목적의 장소라는 점을 잊을 정도로 가정집 본연의 모습이 보존되어 있다. 예술가이기 이전에 한 사람이었던 르누아르의 생애를 돌아볼 수 있는 곳이다.
1층에는 주방과 거실이, 2층에는 부부의 침실과 아이들의 침실이 있다. 집 옆에 위치한 '아뜰리에 르누아르'는 그가 방해받지 않고 작업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다. 아뜰리에 1층에는 휠체어가 하나 있는데, 사실 르누아르는 심한 류머티즘으로 말년에 걸을 수 없었다. 팔과 손 관절도 약해져 그림을 그리기 힘든 상황이었지만 그는 결코 작업을 포기하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르누아르는 말년에 가장 아름다운 그림과 조각품을 완성했다. 코로나19 이전 이곳은 르누아르의 전시관, 집, 아뜰리에, 정원을 포함해 가이드 투어를 운영했다. 역시 코로나19로 잠시 문을 닫은 상태이며 공식 웹사이트를 통해 확진자 추이에 따라 개장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미진 여행+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