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어떻게 보셨나요? (인터뷰)

조회수 2020. 1. 22. 08:3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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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를 생각하면서 우는 아내를 보고 눈물이 났어요."
출처: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82년생 김지영'.
※ 주의: 기사에는 영화 내용이 일부 담겼습니다.

어쩌면 다가오는 설 연휴(오는 24~27일) 가족들과 볼 만한 가장 의미 있는 영화는 지난해 말 개봉한 영화 ‘82년생 김지영’일지 모른다. 제사 음식을 만드는 여성들, 차례를 지내는 남성들, 그들을 뒤에서 지켜보는 여성들. 명절은 한 해 중 한국의 남성 중심적인 문화가 가장 견고하고 변함없이 남아있는 때다.

조남주 작가의 동명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이 작품은 출산과 육아로 경력 단절을 겪는 주인공 ‘82년생 김지영’을 통해 한국 사회에서 여성들이 마주한 차별과 편견을 꼬집었다. 책과 영화는 공감을 사면서 돌풍을 일으켰다. 책은 판매량 130만부를 넘었고 영화도 국내 관객 수 367만명을 돌파했다.

그런데 평가는 엇갈렸다.

영화가 이 시대 한국의 어머니와 나, 여동생의 이야기라는 반응이 있는가 하면, 남녀 갈등을 부추긴다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지난해 말 더불어민주당의 장종화 청년대변인은 남성도 여성과 마찬가지로 차별을 겪었다는 취지의 영화 감상평을 논평 게시판에 올렸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민주당은 논평을 철회하고 감상평이 당의 입장과는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걸그룹 레드벨벳의 멤버 아이린은 책을 읽었다고 밝혔다는 이유만으로 온라인에서 공격을 받았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전 세계 37개국에 판매됐다. 지난해 말 대만과 홍콩에서도 개봉했다.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도 개봉을 앞뒀다. 영화를 인상적으로 봤다는 한국과 대만 청년들에게 연락해 어떤 점이 그랬는지 물어봤다.

출처: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이숙경, 30세, 회사원, 한국

VICE: ‘82 년생 김지영’이 페미니즘 영화라고 느끼셨나요?

이숙경: 사실 페미니즘 내용이라는 말이 많아서 별로 보고 싶지 않았어요. 페미니즘에 그렇게 관심이 있던 것도 아니었고요. 남녀 갈등을 부추기는 내용일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친구가 추천해줘서 막상 보니까 페미니즘 내용이 아니라 평범한 여성의 이야기이더라고요. 한국에서 여성이 겪을 만한 현실을 풀어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품이 한국의 현실을 반영했다고 생각하시나요?

주인공이 학창 시절에 성추행을 당하잖아요. 그걸 보면서 제 경험이 떠올랐어요. 여고를 다녔어요. 학교 가는 길이 후미진 길도 아니었는데 바바리맨을 봤어요. 아마 우리 학교 애들은 다 봤을 거예요. 또 성인이 돼서도 성추행을 당한 적이 있어요. 교대역에서 지하철을 갈아타려고 서 있었어요. 지하철이 도착하자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어요. 거기서 나오는 남성 한 명이 성기를 만지고 지나갔어요. 사람들이 그렇게 많았는데도 자연스럽게 만지고 갔어요.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출산을 앞둔 여성으로서 공감할 수 있었나요?

처음에는 작품에서 주인공이 억울하다고 느끼는 게 와닿지 않았어요. 저는 억울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거든요. 결혼은 제가 선택한 것이었고요. 출산하면 변화가 있다는 것도 알았으니까요. 그런데 출산을 한 달 반 정도 앞두니까 실감이 나요. 남편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는데 혼자 배가 불러 있으니까요. 회사를 비워야 하기도 하고요. 회사는 배려해주고 있지만 그래도 민폐인 것 같고 눈치가 보여요.

출처: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출처: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여인욱, 34, 사업가, 한국

VICE: 영화를 관람하면서 눈물을 흘렸다면 어떤 점 때문이었나요?

여인욱: 아내와 영화를 함께 봤어요. 그런데 영화 속에서 주인공 김지영의 어머니가 당신은 하고 싶던 걸 못했으면서 딸에게 하고 싶은 걸 하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이 대목을 볼 때 옆에 있던 아내가 그동안 헌신하신 장모님을 떠올리면서 눈물을 흘리는 것 같더라고요. 저도 아내의 마음이 느껴져서 눈물이 났어요.

‘82년생 김지영’을 보면서 느낀 건 무엇이었나요?

상대의 입장이 되지 않는 이상 100% 이해하는 건 어려운 일이라는 걸 느꼈어요. 또 평소 (여성들이 겪는 일에 대한) 이해의 깊이가 낮았다는 것도 알게 됐어요. 머릿속으로만 이해하던 일을 영화로 보니까 감정적으로 더 와닿았어요. 물론 영화를 봤다고 해서 모든 걸 이해했다고 말할 순 없겠지만. 영화에서 주인공이 불법 촬영(몰카)이 걱정돼 화장실에 갔다가 그냥 나오는 장면이 있잖아요. 촬영 문제가 심각한 건 알았는데 상황을 보니까 더 심각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출처: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김지선, 28세, 대학원생, 한국

VICE: ‘82 년생 김지영’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무엇이었나요?

김지선: 김지영의 곁에는 함께하려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아내를 사랑하는 만큼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남편, 힘이 돼 주려는 가족들, 일할 수 있도록 응원해주는 전 회사와 동료 선배들. 그런데도 김지영의 삶은 쉽게 나아지지 않았어요. 바로 이 부분 때문에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아팠어요. 개인들의 ‘노력’만으로는 이겨낼 수 없는 '현실의 장벽' 앞에서 위로하기조차 조심스러운 마음이었어요. 한 개인과 가족을 삶의 무게로부터 지켜내기 위해 우리 사회가 준비할 것이 아직 너무 많다고 느꼈어요.

현실의 장벽을 실제로도 느낀 적이 있나요?

전 회사에 다닐 때 인사팀에서 육아휴직을 담당했어요. 영화에서도 나왔지만, 육아휴직이 아직 완전히 일반적이지 않잖아요. '남성'의 육아휴직은 더욱더 어렵죠. 육아휴직에 의지가 있어도 회사에서 안 좋게 보일까 봐, 승진을 못 할까 봐 못 쓰는 경우를 많이 봤어요. 사람들은 개인의 영달을 위해 육아휴직을 못 쓰는 게 아니었어요. 정말 가족들을 먹여 살려야 하고 그러려면 오래 근무해야 하는데 육아휴직 때문에 그게 어려워질까 봐 못 쓰는 거였어요. 남성의 육아휴직은 남편도 아내도 걱정하는 문제였어요.

출처: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출처: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조엘 후쿠자와, 40세, 작가, 대만

VICE: 대만 사람의 관점에서 ‘82년생 김지영’을 어떻게 봤나요?

조엘 후쿠자와: 영화를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느끼는 압박이 이 정도로 큰 줄 몰랐거든요. 하지만 아시아 여성 대부분이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다고 생각해요. 아시아에서는 유교의 영향으로 은연중에 여성을 남성의 부속품으로 보는 경향이 있잖아요.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주인공이 학창 시절에 버스에서 성추행범을 마주쳤을 때 큰소리로 도움을 요청하지 못했다는 것이에요. 앞에 앉아 있던 또 다른 여성에게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었어요. 도움을 요청받은 여성이 했던 행동은 휴대전화를 빌려주는 것이었죠. 대만 사람의 눈으로 봤을 때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만약 대만이었다면 남성은 분명히 버스에서 바로 쫓겨났을 거예요.

영화를 보면서 또 이해가 안 됐던 부분이 있나요?

더 이해가 안 된 건 아버지의 반응이었어요. 아버지가 성추행범에게 어떤 일을 당할지 몰랐던 딸을 마중 나와서 ‘평소 웃지 말고 짧은 치마를 입지 말라’고 말하는 장면이요. 아무리 딸을 위한 마음에서 하는 소리라고 하지만 그런 말을 한다는 게 이해가 안 됐어요. 이건 아시아 아버지들의 공통적인 문제인 것 같아요. 영화를 보면서 한국 여성들의 애환을 알 수 있었어요. 물론 영화는 아시아 여성 모두가 겪는 아픔을 반영했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대만의) 극장에서 영화를 봤을 때 주변 40~50대 여성들이 울면서 영화를 보는 걸 봤어요. 아마도 대만의 여성들도 어린 나이부터 가족들과 동생들을 위해 자신의 미래를 희생해야 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출처: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양즈창, 34세, 저널리스트, 대만

VICE: 대만 사람의 눈으로 볼 때 ‘82년생 김지영’은 어땠나요?

양즈창: 친구랑 같이 영화를 봤어요. 관람 중에 여러 번 눈물을 참느라고 혼났어요. 나중에는 더는 참을 수가 없어서 많이 울었어요. 전통적인 가치관이 사회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했다고 생각했어요. 사회와 가정의 왜곡된 가치관 때문에 여성을 인간답게 대우받지 못하는 상황이 생긴 것 같아요. 영화를 보면서 무력감을 느꼈어요. 또 슬프고 분한 감정을 느꼈어요. 보수적인 가치관이 사회를 더 나아가지 못하게 하고 있어요. 대만의 집안 풍경은 영화 속의 한국의 풍경과 다소 다르지만, 여전히 문제가 있어요. 한국과 대만뿐 아니라 다른 아시아 국가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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