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세상, 하나의 삶

조회수 2021. 1. 7. 13:5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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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끝나면 다녀올 여행, 그리고 지금의 여유

사하라와 나일강

아프리카의 북반구는 사하라 사막이 차지하고 있다. 빌딩만큼 높게 솟아오른 위압감 넘치는 사구에서 눈코입 사이로 스며드는 강력한 모래바람에 이르기까지. 사하라의 잔혹한 환경은 문명의 발전을 가로막는 대자연의 힘이었다. 하지만 그 거친 사막의 끝에도 문명은 태어났다.

동아프리카 깊숙한 곳에서부터 지중해까지 이어지는 나일강의 문명. 우간다에서 발원해 남수단, 수단을 거쳐 이집트를 관통하는 나일강은 척박하기만 한 아프리카 북부 환경에 살아야 했던 사람들에게 젖줄이자 생명줄이었다.


강의 땅에서

수단 북부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누비아 사람들이 나일강 인근에 자리 잡은 것 또한 살아남기 위해서였다. 나일강에 기대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된 주변의 땅을 이용해 농경문화를 시작한 누비아 사람들은 적어도 굶주릴 걱정은 없었다. 그런 이유에서였을까?

 이집트의 국경을 넘어 수단으로 왔을 때 내가 가장 먼저 느낀 것은 누비아 사람들이 가진 나눔의 여유였다. 특히, 누비아인들의 역사적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아브리 지역에 갔을 때 그들의 환대는 그 전과 후에도 내가 여행했던 아프리카 다른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것이었다.


아브리의 사람들

차 한잔하고 가라는 것 정도는 애교. 아브리 지역 누비아 사람들은 밥을 먹고 가라며 한상 차림을 내오려고 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자꾸 내오는 차, 밥을 거절하지 못하다 보니 종일 출렁이는 배를 안고 걸어야 했던 적이 많았다. 그렇게 인사를 나누고 대화를 나누며 걷다 보면 농사를 짓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그 결과물로 차린 그들의 밥상은 우리네 시골 상과 비슷한 부분이 많아 깜짝 놀라기도 했다. 계란에, 콩에, 초록 잎사귀들까지. 당나귀를 타고 학교에 가며, 나무로 만든 보트를 타고 나일강을 건너는 사람들. 강은 수천 년째 똑같이 흐르고, 삶은 비슷한 듯 다르게 지나고 있었다.


누비아 레슬링

수단의 수도 카르툼에는 누비아 사람들뿐 아니라 수단을 구성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다. 여느 나라의 대도시들이 그렇듯, 청운의 꿈을 안고 성공하기 위해 밀려들어 온 외지인들로 가득하다. 타 부족들과 부대끼며 도시 생활을 유지하는 누비아인들이 고향을 얼마나 그리워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의 뿌리를 소중히 한다는 것만큼은 쉬이 알 수 있다.




매주 토요일 교외의 레슬링 경기장에서 벌어지는 누비아 레슬링 대회가 그 증거다. 누비아인들이 레저 활동으로 즐기던 레슬링을 스포츠로 발전시킨 것으로, 다양한 팀들이 있고 매주 치열한 경기가 벌어진다. 관객석에 흥분하는 사람들의 열기를 보고 있노라면 수단 사람들은 축구보다도 레슬링을 더 좋아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어쩌면 저들은 동향 사람들과 어울려 레슬링을 즐기며 그리움을 달래고 있는가. 대회가 끝난 저녁 무렵 경기장을 나서며 그런 생각을 했다.


보르에 닿는 길딩카 부족 사람들을 특정 짓는 한 가지는 그들의 키다. 웬만한 농구 선수 뺨치게 크다. 타 부족인들과 섞여 있다 해도 금방 구분될 만큼 그들의 키는 독보적이다. 나일강을 중심으로 농경을 선택했던 누비아 인들과 달리 딩카족은 유목민이길 남는 걸 택한 사람들이었다. 그들 대부분이 많은 소를 길렀기 때문이다. 거대하게 솟아오른 뿔로 유명한 이 지역의 소들은 오랜 시간 딩카 사람들의 식사이자 옷이자 친구가 되어주었다. 그들은 계절에 따라 소들과 함께 이동했다. 소들이 한 곳의 풀들을 모두 뜯어먹으면 또 다른 곳으로 떠나야만 했다. 딩카 부족과 그들의 소를 만나기 위해 남수단의 북쪽, 보르 지방으로 향했다.


그곳까지 가기 위해 너무나 많은 허가를 받아야 했고, 오가는 길마다 유엔군을 비롯한 다양한 군병력들 또한 보았다. 마을에 도착하고도 3일이 지나서야 겨우 딩카 부족들을 방문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을 수 있었다. 왜 이렇게 복잡한 것일까? 그 이유는 딩카 부족과 타 부족들의 싸움 때문이었다. 인구는 늘어가는데 정부는 개발과 보호를 이유로 전통 부족들이 거주할 수 있는 땅을 좁혀만 가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옛날에는 마주칠 일이 없던 다른 부족들이 딩카 부족의 거주지까지 닿게 되었다. 그들 또한 자신들의 가축을 위한 풀과 물을 찾았고, 결국 땅을 차지하기 위한 분쟁이 벌어지게 되었다. 사태는 치열해져 딩카 전사들이 총을 메고 다닐 정도였고, 지금도 여전히 위험은 남아있다.


소와 사람

복잡한 과정을 거친 끝에 나는 다시 한번 나일강에 닿았고, 그곳에서 딩카 부족과 소떼를 만날 수 있었다. 소똥 냄새가 진동할만큼 소들은 많았고, 그 소들 바로 앞에 그들의 집도 있었다. 딩카 사람들에게 소는 인간과 분리하여 기르는 가축이 아니라 함께 사는 동물들이었다. 앞서 언급한 대로 방문하는 것만도 큰 노력이 필요하다 보니 일반인이 그들을 찾아오는 경우는 흔치 않았고, 덕분에 궁금증으로 가득한 눈동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다만, 언제나 경계 태세를 늦추지 않아야 했기 때문인지, 대부분 표정은 굳어있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큰 감정의 미동이 없는 듯하던 그들은 막상 내가 떠나야 하는 순간이 찾아오자 어색하지만 따뜻한 손으로 나에게 작별 인사를 해주었다.

케이채
사진작가. 다른 거추장스러운 타이틀 없이 오직 사진가로써만 살아가고자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꾸미지 않은아름다움을 사진으로 담고 싶다는 소망 아래 지난 10여년간 60개국 이상을 여행하며 순간을 발견하는 작업을 해왔다. '마음의 렌즈로 세상을 찍다', '말이 필요 없는 사진' 등을 썼다.

본 여행기는 여행매거진 "ARTRAVEL"과 여행콘텐츠 공유플랫폼 "위시빈"의 협업으로 제작되는 콘텐츠로서, 콘텐츠의 저작권은 여행매거진 ARTRAVEL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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