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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며느리가 겪은 괴상한(?) 한국 명절 문화

조회수 2019. 2. 16. 15: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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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번에는 지나갔지만, 설은 영원히 계속된다. 당장 추석도 남아있다. 우리에게 명절은 어떤 의미일까? 모범 답안은 ‘가족 간의 정(情)을 확인하는 시간’일 테지만, 실상도 그와 같을까? 명절을 떠올리면 한숨부터 나오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한숨의 주인공은 대부분 여성일 가능성이 높다. 그들의 보다 정확한 이름은 며느리다.


‘러시아 며느리’ 고미호가 MBC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에 새롭게 합류했다. 한국 생활 6년 차, 결혼 5년 차인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부분이 많다. “경애랑 나랑 1살밖에 차이 안 나니까 그냥 나를 미호라고 부르면 되잖아.” 나이와 관계없이 편하게 이름을 부르는 데 익숙했던 그에게 한국의 복잡한 호칭 문화는 난해하기만 하다. 여기까지는 이해를 한다고 치자.  


“(사촌 시누이가) 나보다 나이 한 살 많은데 (왜 나한테) 언니라고 부르지?” 이 합리적인 물음에 대한 한국적인 답은 남편의 나이가 호칭의 기준이 된다는 것이었다. 결국 절대적 기준은 나이가 아니라 남편의 나이였던 셈이다. ‘미호, 몰랐겠지만... 한국엔 가부장제의 잔재가 뿌리 깊게 남아있어…’ 이쯤 되면 기준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하고 문화라고 퉁치기도 뻘쭘하다.  

“오늘 어떻게 보면 제대로 처음 맞는 명절이잖아. 오늘 음식 준비를 해야 되는데, 잘 해봐.”
“오빠도 도와주지. 도와주는데, 그런데 내가 도와줄 게 뭐 있나?”

호칭 문제는 시작에 불과했다. 안타깝고 애처롭지만, 미호의 앞에는 훨씬 더 큰 산이 놓여있었다. 자,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한국의 명절 문화를 경험해야 할 차례다. 남편 이경택은 굳이 미호에게 한복을 입힌 채 시댁으로 향했고 시어머니는 제사 음식을 준비해야 하니 옷을 당장 갈아입으라고 성화다. ‘나 일하러 온 거야?’ 갑작스러운 상황에 미호는 당황스럽기만 하다.


러시아에도 명절이 있을 것이다. 미호에게 명절은 파티와 동일어였다. “러시아에서 명절은 파티를 해요. 24시간 술 마시고 노는 건데.” 그런데 한국의 명절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물론 명목상은 가족의 정을 확인하는 시간이라지만, 그 정이라는 녀석을 확인하기에 앞서 과중한 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게다가 그 노동이 남녀를 기준으로 얼마나 불합리하게 배분되는지도 배워나가야 했다.

“러시아에서는 남편들이 안 도와주지?”
“러시아에서는 옛날부터 바뀌었어요. 옛날부터 남자들이 음식 만들어요.”

경택의 집안 남자들, (미호를 기준으로) 시아버지와 시숙부, 남편은 거실에 앉아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주방은 온전히 여자들, 시어머니와 시누이 그리고 미호의 차지였다. 너무도 극명하게 분리돼 있어 민망할 정도였다. ‘시대가 바뀌었다’는데 어째서 이 집안의 풍경은 바뀌지 않은 걸까. 제사가 급하다면서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은 채 거실에서 TV나 쳐다보는 남자들의 행동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시아버지는 그 상황이 뻘쭘했는지 혹은 자신들의 행동을 합리화하기 위해서였는지 며느리에게 러시아에 대해 물었다가 본전도 찾지 못했다. 아버지, 러시아는 진작에 바뀌었답니다! 그런데 미호가 이상한 이야기를 한다. “원래 (한국에서) 남자들은 주방에 안 들어오는 거 아니에요?” 권오중이 그 이야기를 어디에서 들었냐고 묻자 미호는 “시아버지”라고 대답한다. 아, 부끄러움은 왜 우리의 몫일까.

“왜 음식도 하기 전에 한숨부터 쉬어. 음식을 하기도 전에 이 사람이. 너 오늘 한번 엄마한테 시집살이 좀 호되게 해볼래.”

명절 음식을 준비하는 게 낯선 미호는 한숨을 쉬었다가 시어머니에게 된통 혼이 나고 만다. 살벌한 시어머니의 말이 야박하게 들리지만, 그를 탓하기도 뭣하다. 제사는 급하고 준비는 더디니 속이 답답할 수밖에. 가뜩이나 남자들은 입만 살아서 빨리 준비하라고 아우성이니 그 스트레스가 오죽했을까. 이 불필요한 고부 갈등의 근원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제사를 없앨 수 없다면 제사를 지내는 데 드는 노동을 합리적으로 분담하면 된다. 명절에 비행기를 타지 않고 명절 음식을 준비할 거라면 가족들이 동등하게 일을 나누면 된다. 하지만 현재의 명절은 누군가에겐 먹고 놀고 즐기는 시간이고 누군가에겐 하루종일 쭈그려 앉아 전을 부치는 끔찍한 시간이다. 


“왜 오빠랑 결혼했어요?” 시누이는 사람 보는 눈이 정확한 미호가 왜 오빠와 결혼했는지 모르겠다고 물었다. 그 농담 섞인 질문에 미호는 러시아 속담을 인용해 이렇게 말했다. “사랑이 엄청 무서운 거야. 염소한테도 사랑에 빠질 수 있대.” 물론 장난기가 다분한 대답이었지만,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 한국의 괴상한 명절 문화를 겪은 미호의 생각은 달라졌을까?

* 외부 필진 님의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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